[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비트코인이 3년여 만에 가장 강한 한 주를 보내며 '디지털 금'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미 국채금리가 재무부의 매입 확대 발표로 급락했다가 곧바로 낙폭을 되돌린 것과 달리 비트코인은 오히려 상승세를 이어가며 증시와의 동조화에서 벗어나는 이례적인 흐름을 보였다.
지난주 비트코인은 약 23% 급등한 반면 S&P500은 하락하고 달러는 약세를 보였다. 특히 19일(현지시각)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이 일부 장기 국채의 자사 매입 규모를 최소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히자 미 국채 30년물 금리는 9bp 하락했고 비트코인은 7% 뛰었다. 이후 장기금리가 당시 하락폭을 거의 되돌렸음에도 비트코인은 추가로 10% 이상 상승했다.
◆ 채권금리 되돌렸는데…비트코인은 더 뛰었다
이번 움직임이 주목받는 이유는 과거 비트코인 급등기와 비교해도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2015년 이후 비트코인이 한 주 동안 15% 이상 상승하면서 증시는 하락하고 금은 오르며 달러가 약세를 보였던 사례는 6번이었다. 당시에는 모두 미 국채 30년물 금리가 하락했다.
이번에는 달랐다. 증시와 달러가 약세를 보이고 금이 상승하는 동시에 30년물 금리가 오른 과거 24개 주간 사례에서 비트코인의 상승률은 평균 약 2%에 불과했다. 가장 강한 상승률도 약 14%였다. 지난주 약 23% 급등은 이 기록을 크게 뛰어넘는다.
비트코인과 S&P500의 20일 상관계수도 지난주 약 0.43에서 거의 0으로 떨어졌다. 반면 금과의 상관계수는 0.5를 넘어섰다. 1년 단위로 보면 비트코인은 여전히 금보다 주식과 더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지만, 지난주 시장에서는 비트코인의 '디지털 금' 성격이 어느 때보다 뚜렷하게 나타났다.
◆ 美 재정 불안이 키운 '화폐가치 하락 거래'
배경에는 미국의 재정 부담과 장기 국채시장에 대한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베선트 장관의 발표 직전 5.34%까지 올라 2007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미 재무부는 장기 국채의 자사 매입 규모를 거래당 20억달러에서 최소 40억달러로 늘리기로 했다.
이는 장기금리 상승과 차입 비용 부담을 낮추려는 조치였지만, 시장에서는 미국 정부가 국채시장에 직접 개입해 장기금리를 끌어내리려는 움직임으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장기금리를 낮추려는 정책이 오히려 다른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40조달러를 넘어선 상황에서 재정 부담이 계속 커지는 가운데 정부가 차입 비용을 낮추기 위해 채권시장에 개입하면 향후 인플레이션이나 달러 가치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다. 실제 지난 주 달러가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금과 비트코인이 동시에 뛰었다.
이른바 '화폐가치 하락(debasement) 거래'다. 정부의 부채와 재정 적자가 지속적으로 늘면서 통화가치가 떨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이 달러나 국채 대신 금과 같은 희소 자산을 사들이는 흐름이다. 최근에는 비트코인까지 이 거래의 대상으로 편입되는 모습이다.
코인에이지 창업자 잭 거즈먼은 비트코인이 "일종의 화폐가치 하락에 대한 투자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상황을 통제하려 들면 결국 그 돈은 비트코인 같은 자산으로 흘러간다"고 말했다.
'크립토 이즈 매크로 나우' 뉴스레터 저자인 노엘 애치슨은 최근의 랠리가 "지난 몇 달간 있었던 미약한 반등들과는 느낌이 다르다"고 평가했다. 헤지펀드 대부 레이 달리오 역시 '지속 불가능한' 부채 스파이럴을 근거로 비트코인에 우호적인 견해를 밝혔다.
◆ 숏커버링 넘어 현물수요 유입
이번 랠리를 재정 불안이라는 거시경제 요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시장 내부의 수급 변화도 상승세를 증폭시켰다.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면서 대규모 공매도 포지션이 청산됐고 현물 거래량이 급증했다. 주간 현물 비트코인 ETF 유입액도 10억달러를 넘어섰다. 강제적인 숏커버링이 상승폭을 키운 가운데 실제 현물 매수세가 함께 유입됐다는 점이 이전의 단기 반등과 다른 부분이다.
코인 시장에서는 가격 상승이 또 다른 상승을 만들어내는 이른바 '자기증폭' 구조가 강세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해왔다. 가격이 오르면 공매도 세력이 포지션을 청산하고 ETF로 자금이 유입된다. 비트코인 관련 기업의 주가가 오르면 이들 기업이 추가 자금을 조달해 비트코인을 매입할 여력도 커진다. 다시 가격이 오르면 시장 밖에 있던 투자자까지 돌아오는 식이다.
거즈먼은 이번 랠리의 매수세가 레버리지 베팅보다는 실제 비트코인 매수에 의해 주도됐다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로 꼽았다. 그는 "이번 폭발적 상승은 레버리지가 아니라 대부분 현물 매수가 견인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한번 의회에 암호화폐 시장 구조 법안인 '클래리티법(Clarity Act)' 통과를 촉구한 것도 투자심리를 뒷받침했다.
비트겟월렛의 리서치 애널리스트 레이시 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재차 관련 입법을 촉구하면서 "규제 리스크 프리미엄이 낮아지는 방향으로 재조정되고 있다"며 명확한 규정이 마련될수록 기관투자자들의 투자 판단도 쉬워진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은 상승 속도가 워낙 빨랐던 탓에 100일 및 200일 이동평균선을 모두 상향 돌파했고, 14일 상대강도지수(RSI)는 과매수 영역으로 올라섰다.
◆ '디지털 금' 랠리, 추세 전환으로 이어질까
문제는 이번 급등이 새로운 강세장의 시작인지 여부다.
비트코인은 한때 사상 최고가보다 43% 낮은 수준까지 밀렸다가 지난 주 약 23% 급등하며 7만7000달러대까지 올라섰다. 여전히 지난해 10월 기록한 사상 최고가인 약 12만6000달러에는 상당폭 못 미친다. 수개월간 이어진 박스권을 벗어나기는 했지만 새로운 거래 범위가 형성됐다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특히 많은 ETF 투자자들이 여전히 손실 구간에 있고, 앞선 상승장에서 가격 상승을 증폭시켰던 디지털자산 재무기업들의 영향력도 이전보다 약해졌다.
결국 숏커버링 이후에도 새로운 현물 수요가 이어질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스탠다드차타드의 제프리 켄드릭은 기록적인 공매도 청산과 10억달러를 넘어선 주간 현물 비트코인 ETF 유입을 근거로 추가 상승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는 올해 연말 비트코인 전망치인 10만달러가 너무 낮을 위험이 생겼으며, 연말 이전 사상 최고가인 12만6000달러를 넘어서는 움직임도 가능하다고 봤다.
다만 8월 계절성은 부담이다. 2015년 이후 8월 비트코인의 중간값 기준 수익률은 약 -8%였고, 이전 11번의 8월 가운데 상승한 경우는 세 차례에 불과했다. 다만 2017년과 2021년에는 8월 두 자릿수 상승 이후 9월 조정을 거쳐 10월 각각 49%, 40% 급등했다. 두 사례만으로 향후 흐름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참고할 만한 패턴이다.
탈로스의 타나이 베드 수석 애널리스트는 "가격이 계속 오르는 와중에도 투자자들이 단순히 숏 포지션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장에 새로운 매수세가 유입되는 고무적인 신호가 나타났다"고 말했다.
kwonji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