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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황숙혜 기자 = 브로드컴(AVGO)의 가이던스 실망에서 비롯된 미국 반도체 섹터 급락은 인공지능(AI) 설비투자(Capex) 슈퍼사이클을 둘러싼 보다 근본적인 의문에 불을 당겼다.
투자은행(IB) 업계는 구글 모기업 알파벳(GOOGL)과 메타 플랫폼스(META), 마이크로소프트(MSFT), 아마존(AMZN) 등 4대 하이퍼스케일러의 2026년 합산 '카펙스'를 7250억달러로 예상한다. 이는 전년 대비 77% 급증한 동시에 사상 최대 규모에 해당하는 수치다.
업체별로는 아마존이 2000억달러, 알파벳이 1750억~1850억달러, 마이크로소프트가 1900억달러, 메타가 1150억~1350억달러의 설비 투자를 각각 계획하고 있다. 골드만 삭스는 이들 4개 업체의 2025~2030년 누적 설비 투자 총액이 5조3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고, 2026~2031년 컴퓨팅·데이터센터·전력을 포괄한 투자 규모는 7조6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투자의 75%가 AI 인프라에 집중될 전망이다. 크레딧사이츠는 보고서를 통해 2026년 하이퍼스케일러 설비 투자의 약 75%, 즉 4500억달러 상당이 GPU(그래픽 처리장치)와 서버, 네트워크 장비,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에 직접 투입될 것으로 추산했다.
역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한 분야에 집중된 베팅은 반도체 섹터 전체를 사실상 'AI 카펙스' 사이클의 종속 변수로 만들어 놨다.
시장 전문가들은 반도체 섹터 내부의 양극화를 경고한다. AI 칩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이 스마트폰과 PC 등 소비 가전 부문은 한파가 거세다는 지적이다.
양극화의 가장 선명한 증거는 스마트폰 시장이다. IDC는 2026년 전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이 전년 대비 12.9% 감소한 11억대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시장 역사상 최대 낙폭인 동시에 10년 만에 최저 수준의 출하에 해당한다.
시장 전문가들은 급감의 핵심 원인으로 AI 인프라 투자가 소비 가전과 동일한 D램 및 낸드 공급망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을 꼽는다. AI 데이터센터 구축 붐이 메모리 칩 수요를 급속히 흡수하면서 세계 최대 메모리 칩 제조사들이 소비 가전용 공급을 희생해가며 AI 인프라 공급 쪽으로 전략적 선회를 단행했다는 얘기다.
IDC는 "일시적 공급망 충격이 아니라 메모리 공급망에서 발원한 쓰나미급 충격으로, 소비 가전 전반에 파급효과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IDC는 스마트폰 평균 판매가가 올해 14% 급등해 사상 최고치인 523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하고, 100달러 미만 스마트폰 시장은 메모리 가격이 안정화되는 2027년 중반 이후에도 구조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처럼 AI 반도체와 비AI 반도체 사이의 간극은 단순한 수요 사이클의 차이를 넘어 업계 재편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세계반도체무역통계기구(WSTS)는 2026년 글로벌 반도체 매출이 약 9755억달러로 1조달러 문턱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이 같은 성장은 광범위한 물량 확대가 아니라 AI 인프라 스택에 집중된 고가 로직·메모리·네트워크 실리콘의 믹스 전환에 의해 견인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성장의 과실은 극도로 좁은 영역에 집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원자재 공급 부족과 지정학적 리스크도 AI 투자 슈퍼사이클에 커다란 걸림돌이다. 시장 조사기관 옴디아(Omdia)의 2026년 1분기 세미다이나믹스 보고서에 따르면, 반도체 산업의 1조달러 밸류에이션 경로는 혁신 부족이 아니라 전력부터 구리, 특수가스 부족이라는 물리적, 지정학적 제약으로 인해 막혀 있다.
데이터센터 용량 1메가와트를 구축하는 데 배선과 냉각을 위해 약 27톤의 구리가 필요한데 구리 가격은 2026년 파운드당 6달러 선을 웃돌며 사상 최고치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전력 제약은 더욱 구조적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까지 전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이 거의 두 배로 늘 것으로 전망하고, AI 워크로드의 비중은 세 배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버지니아 북부와 피닉스, 오하이오 중부 등 주요 데이터센터 집적지의 전력 유틸리티들은 이미 수십 년 단위 장기 공급 계약을 프리미엄 가격에 체결하고 있다.
알리안츠 리서치는 지난 3월 보고서에서 글로벌 데이터센터 용량이 2030년까지 현재의 약 130기가와트에서 260기가와트로 두 배 확장될 예정이고 하이퍼스케일러들이 전체 IT 부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포인트 확대돼 60%를 넘어설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른바 AI 카펙스 슈퍼사이클의 대표적인 약한 고리는 ROI(투자수익률)다. 알리안츠 리서치는 현재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설비 투자 집중도가 매출 대비 34%에 달해 1990년대 인터넷 인프라 붐 당시 정점이었던 15%의 두 배를 훌쩍 넘겼다고 지적했다.
설비 투자와 매출 증가율 사이의 격차는 약 46%포인트로, 2001년 통신 과잉 투자 사이클 당시 관찰된 32%포인트 격차를 이미 초과한 상태다.
시장은 이미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골드만 삭스는 "AI 인프라 기업들의 주가는 연초 이후 평균 44% 상승했지만 같은 기간 해당 기업들의 2년 주당순이익(EPS) 추정치는 9% 상승에 그쳤다"며 "설비 투자 증가세가 결국 둔화되는 시점은 이들 기업의 밸류에이션에 커다란 위험 요인"이라고 경고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와 에버코어는 2027년 하이퍼스케일러 합산 설비 투자 1조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집행 여부가 AI 투자 수익률 증명에 달려 있다는 단서를 붙였다.
씨포트 리서치(Seaport Research) 반도체 담당 애널리스트 제이 골드버그는 "잠재적으로 닷컴 버블에 버금가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AI 설비 투자의 지속 가능성이 결국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수익 창출 능력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2027년 지출 모멘텀이 급격히 꺾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알리안츠 리서치는 설비 투자 증가율이 2026년 51%에서 2027년 13%, 2028년 약 5%로 빠르게 둔화되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급격한 둔화가 기저 효과의 자연스러운 소화 과정이라는 의견이다.
낙관론자들의 논리도 단단하다. 제퍼리스는 "하이퍼스케일러들의 마진 레버리지가 AI 투자에도 불구하고 유지되고 있어 구조적 수익성이 뒷받침된다"고 평가했다.
AI 인프라 투자가 클라우드 수요와 기업 생산성 향상으로 실제 수익으로 전환된다면 현재 슈퍼사이클은 중간 조정을 거치며 지속되겠지만 ROI가 지출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국면이 도래하면 브로드컴 쇼크는 서막에 불과하다고 월가는 경고한다. 반도체 섹터가 분기점을 맞았다는 얘기다.
shhwang@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