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이나영 기자= 코스피가 13일 반도체 대형주 급락과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세에 6000선까지 밀리며 가까스로 하락을 멈췄다.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차세대 D램 출시 계획에 따른 경쟁 심화 우려가 커진 가운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7%, 10% 넘게 급락하면서 코스피는 장중 5900선까지 내려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 거래일 대비 348.89포인트(5.46%) 내린 6035.35에 거래를 마쳤다. 외국인이 5조1532억원을 순매도한 반면 개인과 기관은 각각 2조9096억원, 1조7679억원을 순매수했다. 코스피가 이틀 연속 급락하면서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도 5000조원 아래로 내려섰다.
이날 코스피는 6186.08로 출발한 뒤 낙폭을 확대해 장중 5911.11까지 떨어졌다. 오전 9시 47분 58초에는 유가증권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후에도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6000선을 밑돌았지만 장 후반 낙폭을 일부 줄여 6000선을 회복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것은 8월 19일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지수 급락의 중심에는 반도체 대형주가 있었다.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 대비 7.39% 내린 23만2000원에 거래를 마쳤으며 SK하이닉스는 10.09% 하락한 144만3000원에 마감했다. 두 종목의 시가총액은 각각 1356조3366억원, 1054조1005억원으로 집계됐다.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두 종목이 동반 급락하면서 지수 하락 폭도 커졌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급락의 원인으로 중국 메모리 업체의 기술 추격과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수익성 논란, 외국인 매도에 따른 수급 부담을 지목하고 있다.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전망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향후 이익 증가세가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 中 창신메모리 기술 추격에 AI 수익성 우려까지
이번 반도체주 급락의 주요 배경으로는 중국 창신메모리(CXMT)의 차세대 서버용 D램 출시 계획이 꼽힌다. CXMT가 차세대 4F² 구조를 기반으로 한 서버용 메모리 제품을 연내 선보일 가능성이 알려지면서 글로벌 메모리 시장의 경쟁 심화 우려가 커졌다.
4F²는 D램 메모리 셀의 면적을 줄여 집적도를 높이는 기술이다. 해당 기술이 상용화될 경우 동일한 면적에서 더 많은 메모리를 생산할 수 있어 생산 효율과 원가 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 업체가 차세대 D램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장기 시장 경쟁력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과 AI 서버 수요 확대에 힘입어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상향되는 상황에서 중국 업체의 공급 확대 가능성이 알려졌다는 점이 주목된다. 현재의 높은 수익성이 향후 공급 경쟁 심화에도 유지될 수 있는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양현경 iM증권 연구원은 "최근 반도체 대형주 하락에는 AI 인프라 투자의 자금조달 및 수익성 우려, 중국 CXMT의 기술 추격, 외국인 매도에 따른 수급 부담이 겹쳤다"며 "전 거래일에는 거래대금이 감소한 가운데 외국인 매도가 집중돼 지수 하락 폭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다만 CXMT의 기술 개발 계획이 곧바로 국내 메모리 업체들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신제품 개발과 실제 양산에는 차이가 있으며 수율과 제품 성능, 고객사 인증 여부 등이 확인돼야 하기 때문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CXMT가 양산에 성공한 것도 아니고 연말까지 공개 및 출시하겠다고 밝힌 것이며 수율, 성능, 고객 인증 등이 검증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중국발 차세대 메모리 공급 과잉을 현 시점부터 주가에 반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분석했다.
미국 반도체 업종의 약세도 국내 증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12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2.67% 하락했다. 마이크론(-3.88%), 엔비디아(-1.29%), 브로드컴(-1.88%)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일제히 내렸다.
반도체 공급 확대 우려와 함께 AI 산업의 투자 수익성 논란도 영향을 미쳤다. 대규모 데이터센터와 AI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자금이 빠르게 증가하는 가운데 실제 매출과 이익이 투자 규모에 걸맞게 늘어날 수 있는지가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브로드컴과 인텔 경영진이 AI 인프라 투자에 필요한 자본 조달 부담을 언급하면서 관련 산업의 수익성에 대한 우려가 확대됐다. AI 인프라 투자 증가가 반도체 수요를 뒷받침하고 있지만 투자 자금 확보와 수익 창출 여부에 따라 향후 수요 증가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김민규 KB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 급락의 원인은 반도체 업종에 대한 투자심리 악화와 수급 공백, 불안한 대외 경제환경 등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며 "중국 CXMT의 신규 서버 메모리 출시 계획 등 AI 하드웨어 관련 공급 확대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 외국인 매도에 자사주 매입 종료…수급 부담 확대
중국 반도체 업체의 기술 추격 우려가 주가 하락의 계기가 됐다면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와 국내 증시의 매수세 약화는 낙폭을 키운 요인으로 꼽힌다. 외국인은 지난 12일 코스피 시장에서 2조원 넘게 순매도한 데 이어 13일에는 5조1532억원을 순매도하며 매도 규모를 확대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이달(10월1일~13일) 코스피 시장에서 총 13조6265억원을 순매도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형주에 매도세가 집중되면서 지수 하락 폭이 더욱 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자사주 매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점도 수급 부담을 키우고 있다. 그동안 외국인의 매도 물량을 일부 흡수했던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이 줄어들면서 신규 매수세가 충분히 유입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자사주 매입은 이달 6일 종료됐으며 SK하이닉스도 이번 주를 전후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국인 매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까지 줄어들면서 주가 변동성이 확대되기 쉬운 구조가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정다운 LS증권 연구원은 "국내 기관 투자자든, 개인 투자자든 매수 여력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외국인의 순매도가 가격의 변동 폭을 확대하는 양상"이라며 "AI 인프라 투자 지속의 불확실성과 아직 확인되지 않은 수익화 문제 등을 감안할 때 외국인 입장에서 반도체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못한 업종으로 평가된 듯하다"고 분석했다.
수급 부담이 커진 가운데 코스피가 주요 기술적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200일 이동평균선까지 이탈하면서 추가 매도 물량이 출회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이날 하락에 대해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분기 실적을 기록하고 SK하이닉스의 이익 전망도 상향되고 있지만 주가 하락 압력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며 "외국인의 매도 물량을 흡수할 신규 매수세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전망과 주가 흐름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KB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모두 4배 이하로 하락했다. 현재의 이익 규모와 비교하면 주가 수준이 낮아졌지만 시장에서는 향후 이익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의 이익 추정치는 계속 올라가고 있지만 주가는 오히려 꺾이고 있다"며 "미래 이익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반도체 업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면서도 경기순환 산업이라는 특성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쉽게 해소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 반등 여부는 외국인 수급·반도체 실적에 달려
증권가에서는 이번 급락이 기업들의 실적 전망 악화보다는 반도체 업종의 중장기 수익성에 대한 의구심과 외국인 매도세가 겹친 결과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단기간 하락 폭이 커진 만큼 향후 반등 가능성을 두고는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중국 메모리 업체의 기술 개발이 실제 공급 확대로 이어지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CXMT의 신제품 출시 계획이 알려졌지만 양산 수율과 고객사 확보 여부 등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전망이 유지되는지도 중요한 변수다. 현재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 자체보다 2027년과 2028년에도 높은 이익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의 물가 지표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발표도 향후 증시 방향을 가를 변수로 꼽힌다. 이번 주 예정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와 TSMC·ASML 등의 실적 발표에서 금리와 반도체 수요에 대한 우려가 완화되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강진혁 신한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미국 물가 지표를 계기로 금리가 안정되고 TSMC와 ASML의 실적 발표에서 반도체 업황에 대한 의구심이 완화될 경우 매도 강도가 진정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면 외국인 매도세가 지속되고 반도체 대형주의 주가 회복이 지연될 경우 코스피의 변동성이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주요 이동평균선을 이탈한 상황에서 외국인 수급이 개선되지 않으면 단기 반등이 나타나더라도 상승세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양현경 iM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의 12개월 선행 PER은 3.91배까지 낮아졌다"면서도 "반도체는 경기순환 산업인 만큼 낮은 PER만으로 저평가를 판단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PER로 매수 시점을 잡기보다는 2028년 이후에도 높은 이익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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