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나 다름없는 중간선거가 오는 11월 3일(현지시간)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1·2기를 통틀어 국정 수행 지지율 최저치를 기록하며 치명적인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다.
로이터 통신과 입소스가 지난달 21일 발표한 최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2%로 떨어졌다. 이는 직전 주 조사에서 기록한 35%보다 3%포인트 하락한 수치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경력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굳건했던 공화당 내부 지지율마저 일주일 만에 82%에서 73%로 급락했다. 특히 유권자의 17%만이 물가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공화당 지지층 내부에서조차 생계비 대응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과반을 넘어섰다.
현재 판세상 민주당의 하원 탈환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가운데, 민주당이 상·하원 중 단 한 곳이라도 다수당 지위를 확보할 경우 소환장 발급권과 전담 조사 예산·인력을 바탕으로 트럼프 대통령 일가와 집권 2기 수혜 기업들을 향한 대대적인 청문회 개최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0' 사법 리스크의 현실화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는 다수당 지지 유지만이 탄핵 정국 위험을 막아낼 유일한 방파제다. 위기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이 꺼내 든 반전 카드와 막판 정국의 핵심 변수를 짚어본다.
◆ 트럼프 일가와 집권 2기 수혜 기업 조사 벼르는 민주당
민주당은 트럼프 1기 임기 당시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1·6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로 미 역사상 최초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두 차례나 하원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비록 상원 문턱을 넘지는 못했지만, 이번에 민주당이 다시 하원 다수당을 차지할 경우 과거의 '탄핵 국면'을 재현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이 의회 주도권을 되찾는다면 내년 2월부터 새로 출범할 의회 조사의 핵심 표적은 단연 트럼프 대통령 개인과 그 가족의 비즈니스 제국이다. 지난달 28일자 로이터 통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자산은 집권 2기 들어 가상자산·드론·인공지능(AI)·예측시장 등의 분야로 사업 영역을 넓히며 약 22억 달러(약 3조 원)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민주당 의회 지도부는 백악관과 달리 민간 기업은 '대통령 행정부 특권'을 이유로 의회의 자료 제출 요구나 소환장 발급을 거부할 법적 명분이 없다는 점을 집중 공략하고 있다. 하킴 제프리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가 첫날부터 책임을 묻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주요 타깃으로는 트럼프 대통령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벤처캐피털 1789캐피털이 투자한 희토류 스타트업 벌칸 엘리먼츠가 꼽힌다. 이 회사는 투자 이후 단 3개월 만에 국방부로부터 6억 2천만 달러 규모의 대출을 승인받았는데, 민주당은 이 과정에서 특혜가 있었는지를 정밀 검증하겠다는 입장이다.
대통령 특사 역할을 맡으면서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국유펀드와 사모펀드 거래를 이어간 맏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이해충돌 의혹도 핵심 조사 대상이다. 이 외에도 트럼프 대선 캠페인에 대규모 기부를 약속한 뒤 세금 감면 및 환경 규제 완화 혜택을 받은 석유·가스 기업들, 요세미티 국립공원 부지 매각 추진 의혹, 지난 5월 트럼프 주니어의 카리브해 섬나라 바하마 결혼식 피로연 비용 일부를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 재벌) 우마르 크렘레프가 대납했다는 의혹 등 파상공세가 예고되어 있다.
◆ '고물가 심판론'의 부메랑…흔들리는 텃밭 민심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을 집중 공격하며 정권을 되찾았던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현재는 급등한 생계비 부담(affordability 이슈)이 오히려 공화당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이 되었다.
이란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차단,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공격 등으로 미국의 경유 평균 가격은 최근 사상 최고치인 갤런당 6.53달러에 근접했다. 특히 중서부 곡창지대의 충격이 커 일리노이주의 경유 평균 가격은 갤런당 6.82달러를 기록했다. 경유는 트랙터, 콤바인 등 농기계와 화물 운송의 핵심 연료인 만큼 공화당의 전통적 텃밭 민심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비료 가격도 급등했다. 중동 전쟁으로 수출길까지 막히면서 비료 가격은 1년 사이 최대 50%나 올랐다. 최근 미·중 정상회담 후 합의된 품목 상호 관세 인하 대상에 옥수수와 밀은 포함됐으나, 미국 농업 수출의 최대 품목인 대두가 제외되면서 농가의 실망감은 더욱 커졌다.
브루킹스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대선 당시 농촌 지역 표의 64%를 득표했으나, 최근 폭스뉴스 조사에서 농촌 유권자 내 트럼프의 순지지율(지지율-반대율)은 지난해 초 +20에서 최근 -14로 폭락했다.
유가와 비료값 급등으로 인한 농가 충격에 더해,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 급등은 표심의 열쇠를 쥔 중산층과 청년층의 삶까지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이날 미 국책 담보대출업체 프레디맥에 따르면 30년 만기 고정 주택대출 평균 금리는 7.28%로 집계되며 2023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주간 상승 폭만 0.25%포인트로, 2022년 10월 이후 약 4년 만에 가장 가파른 오름세다.
이는 미 10년물 국채 금리가 장중 5.342%(2002년 이후 최고치)까지 치솟은 여파다. 이란과의 전쟁 장기화, 인플레이션, 정부 부채 급증 우려 및 AI 투자를 위한 기업 차입 확대가 맞물려 국채 매도세를 부채질했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의 직격탄은 생애 첫 주택 구매자와 대출 의존도가 높은 중산층에게 집중되고 있다. 미국모기지은행협회(MBA)의 주택 구매 대출 신청 지수는 지난해 4월 이후 최저 수준(4.3% 하락)으로 떨어졌다.
결국, 고유가와 고금리가 겹친 복합 위기는 중간선거를 한 달 앞둔 트럼프 행정부의 최대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 '현금 살포' 등 초당적 포퓰리즘 표심 잡기
벼랑 끝에 선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른바 '현금 살포'와 정부 개입형 정책을 대거 동원하고 있다.
지난달 초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시절 과다 청구된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ACA)' 환급을 약속했는데, 지난달 30일 연방 건강보험거래소(HealthCare.gov)를 이용하는 30개 주의 ACA 가입자 약 100만 명을 대상으로 500달러 수표 발송 작업을 개시했다. 수표와 함께 자신의 보건의료 성과를 홍보하는 서한이 동봉돼 노골적인 표심 잡기라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달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열린 공화당 중간선거 전당대회 기조연설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해 상·하원 다수당 지위를 지켜낸다면 미국 성인 1인당 5천 달러의 '트럼프 배당금'을 지급하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내걸었다.
이념적 대립을 넘어선 행보도 눈에 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을 '파시스트'라 비난해 왔고, 본인 역시 '공산주의 미치광이'라 맹공을 퍼부었던 민주사회주의자(DSA) 소속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과 지난달 21일 뉴욕에서 전격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서민 주택 공급 사업인 '서니사이드 야드' 지원을 논의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는 극단적 이념 대립보다 실질적인 주거비·생계비 부담 완화를 갈망하는 유권자 심리를 간파하고, 중도층 표심을 의식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념적 틀을 벗어난 정부 개입형 포퓰리즘 정책이 미 정치권의 새로운 주류로 부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달 16~21일 등록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오차범위 ±2.5%포인트[p]) 결과에 따르면, 신용카드 이자율을 연 10%로 제한하는 방안이나 근로 가구의 보육비 부담 상한제, 정부 주도의 의약품 할인 웹사이트 운영 등은 여야 지지층을 가리지 않고 70~80%에 달하는 압도적 찬성을 얻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월 첫날인 1일부터 중간선거까지 32일간 접전지 35곳을 매일 방문하는 전국 순회 유세에 돌입했다. 유세 지역에 텍사스, 오하이오, 앨라배마, 네브래스카 등 전통적 공화당 강세 지역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은 텃밭 민심마저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 텃밭인 텍사스조차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한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과 민주당 후보 간 초박빙 승부가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접전지 35곳을 모두 방문하겠다고 공언했으나,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유세가 공화당 후보에게 실제로 도움이 될지 여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전당대회에서 "나를 보고 투표해달라"고 호소했지만, 당내에서는 '트럼프 브랜드'를 내세우는 것이 오히려 표를 깎아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란 분쟁에 따른 물가 상승은 물론,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대한 지역 내 반감도 커지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공화당 일각에서는 역효과가 우려되는 지역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 사라지는 '중동 반전 카드'… 텃밭·포퓰리즘 정면 돌파
결국 유가 안정과 국정 성과 입증의 열쇠는 중동 정세의 결자해지에 달려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라크에서의 완전 철수를 발표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량이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히는 등 안보 성과를 부각하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이란과의 실질적인 협상 타결은 요원한 상태다.
이란 측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핵 협상 시작을 골자로 한 '7일 휴전안'을 미국 측에 제안했지만 미국은 거절했다. 이란은 미국에 해상 봉쇄 해제, 원유 제재 유예,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습 중단 등을 조건으로 요구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전쟁에서 불리해진 이란의 조급한 계산이 깔린 제안으로 판단해 단칼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 간 교착 상태가 길어지면서 외교적 대화 채널마저 중단된 상태다. 미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에 따르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 머물던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 등 이란 대표단에 지난달 28일 즉시 출국을 요구했다. 협상에 별다른 진전이 없자 뉴욕에 있던 이란 대표단을 사실상 추방한 것으로, 중간선거 전에 극적인 합의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이란 진단이 나온다.
외교적 타결이 막히자 트럼프 행정부는 중동 정세 수습을 중간선거 이후로 미루는 동시에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과 제13해병원정대를 포함해 9천~1만 명 규모의 추가 병력을 중동에 파견했다. 이미 조지 H.W. 부시함, 워싱턴함 등 2척의 항모와 5만여 명의 미군이 배치된 상황에서, 중동 지역에 미 항모 3척이 동시에 집결하는 것은 지난 4월 이후 처음이다.
결국 이란과의 외교적 타결을 통한 유가 안정 카드가 중간선거 이후로 밀리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핵심 지지층을 향한 호소와 선전전, 그리고 현금 지급과 같은 포퓰리즘 정책에 더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wonjc6@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