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금리 결정이 단순한 통화정책 판단을 넘어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의 리더십과 중앙은행 독립성을 가늠하는 중대 시험대로 떠올랐다.
뜨거워진 인플레이션으로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전망이 급격히 강화됐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일 금리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선택한 워시 의장이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연준과 백악관의 관계는 물론 금융시장의 정책 신뢰도까지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연준은 오는 15~16일(현지시간) 이틀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 뜨거운 물가에 시장 87% 금리인상 전망
시장에서는 이미 금리 인상 가능성을 기정사실에 가깝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미 노동부가 지난 12일 발표한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4%, 전년 동월 대비 3.4% 올라 시장 예상을 웃돌았다. 근원 CPI도 전월 대비 0.3% 상승해 예상보다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도 물가 압력을 키울 변수다. 미국 원유 가격이 최근 2주 사이 약 20% 뛰어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10년물 국채금리 역시 4.97%까지 오르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반영했다.
이에 CME 페드워치 기준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한때 87%까지 치솟았고, TD은행과 JP모간체이스 등 주요 월가 기관들도 CPI 발표 이후 잇달아 인상 전망으로 선회했다.
특히 워시 의장은 지난달 잭슨홀 연설에서 "인플레이션은 우리의 2% 목표를 웃돌고 있다"며 "연준의 현재 최우선 초점은 물가에 맞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번 CPI가 예상보다 뜨겁게 나온 상황에서 금리를 동결할 경우 그동안 강조해온 물가 중심의 정책 기조와 실제 행동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트럼프 압박 속 인상도, 동결도 부담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아일랜드에서 기자들에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금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회의에서 금리를 올릴지 묻자 "모르겠다"고 답했지만, 연준에 금리 인하를 요구해온 기존 입장은 재차 확인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소셜미디어를 통해 연준이 금리를 내리지 않을 경우 무역 적자국과의 교역을 중단하겠다는 취지의 강한 압박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결정은 11월 3일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뤄진다는 점에서도 백악관과 연준의 이해가 엇갈린다. 물가와 생활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차입 비용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물가 압력이 여전한 연준 입장에서는 섣불리 통화완화에 나설 이유가 적다.
워시가 금리를 올리면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스르게 되고, 동결하면 이미 인상 가능성을 높게 반영한 시장의 실망과 함께 물가 대응 의지에 대한 의문을 불러올 수 있다.
연준 내부에서도 의견은 엇갈린다.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 등은 추가 데이터를 확인해야 한다는 입장에 가까운 반면, 워시 의장은 단기 지표 하나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접근에 경계심을 보여왔다.
헤더 롱 네이비페더럴 신용조합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워시 의장이 "지금 정치적으로 이길 수 없는 상황"이라며 "금리를 올리면 트럼프의 질책을 받고, 동결하면 시장의 역풍을 맞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트럼프가 선택한 의장' 넘어설까…첫 리더십 시험
이번 결정의 핵심은 단순히 금리를 몇 베이시스포인트 움직이느냐가 아니다.
금리 인상은 단기적으로 긴축이지만, 연준이 인플레이션에 적극 대응한다는 신호를 시장에 줄 경우 오히려 장기금리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반대로 물가 대응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투자자들이 향후 더 강한 긴축을 예상하면서 장기금리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워시 의장에게 이번 회의는 자신의 정책 원칙을 실제 행동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자리다. 동시에 대통령의 압박에도 연준의 독립성을 지키고, 동료 정책결정자들과 시장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지를 시험받게 된다.
더구나 워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선택한 의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워시에게 독립적으로 행동할 것을 주문하면서도 지속적으로 금리 인하를 요구해왔다. 과거 제롬 파월 전 의장을 공개적으로 압박했던 전례까지 고려하면 이번 결정은 백악관과 연준의 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결국 15~16일 FOMC는 워시가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연준 의장'에 머무를지, 아니면 대통령의 압박과 별개로 물가 안정과 연준 독립성을 지키며 시장과 동료 정책결정자들에게 신뢰받는 중앙은행 수장으로 자리 잡을지를 가늠하는 첫 중대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kwonji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