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AI 투자 열풍이 미국 빅테크 실적까지 끌어올리고 있지만, 실제 사업 성장과 투자자산 평가이익이 뒤섞이면서 실적이 실제보다 좋아 보이는 '착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알파벳(GOOGL)과 아마존(AMZN), 엔비디아(NVDA), 마이크로소프트(MSFT) 등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지난 분기 다른 AI 기업에 대한 투자로 1600억달러(약 220조원) 이상의 지분 평가이익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AI 산업에 대한 기대가 기업들의 지분 가치까지 끌어올리면서 실적이 개선됐지만, 일회성 평가이익이 실제 사업에서 벌어들인 이익과 뒤섞이면서 AI 관련 실적의 질을 둘러싼 의문이 커지고 있다.
30일(현지시각)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실적을 분석한 결과 이들 기업이 다른 AI 기업의 지분 가치 상승으로 손익계산서의 '기타 수익'을 크게 늘렸다고 전했다. 특히 알파벳과 아마존은 신규 사업이나 현금 창출 증가보다 AI 기업 지분에서 발생한 평가이익이 이익 증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골드만삭스의 벤 스나이더 미국 주식 수석 전략가는 몇 년 전부터 투자자들이 빅테크 매출의 '순환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고 짚으면서, 이번 AI 투자이익 급증이 "이들 기업의 성장이 실제 수요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새롭게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 AI 투자 열풍이 빅테크 실적까지 끌어올려
빅테크의 오픈AI·앤스로픽에 대한 투자는 최근 분기 실적에 갈수록 뚜렷하게 반영되고 있다. 회계 규정상 지분투자 가치 변동은 매 분기 손익에 반영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올해는 스페이스X(SPCX)의 기업공개(IPO)가 평가이익을 한층 키웠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과 엔비디아가 스페이스X 지분을 보유한 가운데, 스페이스X가 일론 머스크의 AI 기업 xAI를 흡수한 뒤 상장하면서 궤도상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대한 기대까지 겹쳐 기존 투자자들의 지분 가치가 크게 뛰었다.
알파벳의 기타 수익은 지난 6월 말 종료된 3개월 동안 979억달러(약 134조6천억원)로 직전 분기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아마존 역시 같은 기간 기타 수익이 534억달러(약 73조4천억원)로 세 배 이상 증가했다. 대형 기술기업들의 이번 분기 세전이익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알파벳과 아마존의 경우 신규 사업이나 현금 창출보다 스페이스X·앤스로픽 지분 평가이익이 주된 증가 요인이었다.
엔비디아는 6월 말 기준 스페이스X 주식 약 1억230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7월 말 종료된 분기 엔비디아의 기타 수익은 77억달러(약 10조6천억원)로, 인텔 지분 평가이익이 반영됐던 직전 분기보다는 줄었다.
지난 분기 빅테크 전체의 기타 수익 기여분은 약 1600억달러(약 220조원)로, 직전 3개월의 약 690억달러(약 94조9천억원)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오픈AI와 앤스로픽의 IPO 가능성이 거론되는 만큼 이 같은 흐름은 내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 '실제 성장인가, 평가이익인가'…이익의 질 논란
문제는 이 같은 이익이 지속 가능한 수익인지 여부다.
비상장 기업 지분은 새로운 자금 조달이 이뤄질 때, 상장기업 지분은 매 분기 시장가치에 맞춰 재평가된다. AI 기업들의 기업가치가 급등하면 해당 지분을 보유한 빅테크의 이익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이지만, 이는 제품 판매나 서비스 이용 증가로 발생하는 현금성 이익과는 성격이 다르다.
분석가들은 미국 기술업계의 기초적인 이익 창출력 자체는 여전히 견조하다고 평가하면서도, 들쭉날쭉한 AI 투자이익 때문에 실적의 실제 흐름을 파악하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시에테제네랄의 마니시 카브라 미국 주식 전략 책임자는 이러한 평가이익이 '이익의 질(earnings quality)' 우려를 키웠다며, 이 같은 우려가 시장의 주가수익비율(PER)을 약 25배에서 20배 수준으로 낮추는 데 일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향식(top-down) 투자자 입장에서는 기술 부문 전반의 투자에 대한 우려가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노르디아자산운용의 카스퍼 엘름그린 최고투자책임자는 상반기 실적이 기업들의 반복 가능한 이익 창출력을 "상당히 과대평가했다"며 이 같은 AI 이익의 순환성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라고 말했다. 씨티의 스콧 크로너트 미국 주식 전략가는 올해 발생한 대규모 일회성 평가이익 조정이 내년에는 오히려 "잠재적인 마이너스 이익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페더레이티드 헤르메스의 루이스 더들리 글로벌 주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러한 평가 조정의 규모가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분석을 복잡하게 만들고 추가적인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이들 기업이 성공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투자하고 협력해 온 점은 어느 정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kwonji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