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뉴스핌] 권지언 특파원 =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가치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메모리 반도체 업종의 '슈퍼사이클' 기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며 마이크론 테크놀로지(Micron Technology, 종목코드:MU) 주식을 공매도했다고 밝혔다.
5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버리는 자신의 서브스택 게시글을 통해 주당 1,051.87달러(약 161만 원)에 마이크론 주식을 직접 공매도했다고 공개했다. 그는 풋옵션이 비싸 보여 옵션 대신 주식을 직접 숏쳤으며, 향후 변동성이 진정되면 풋옵션도 추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 "마이크론, 그 어느 산업보다 사이클적"…트럼프 극찬 직후 공매도 '아이러니'
버리는 게시글에서 마이크론에 대해 "그 어느 업종보다 사이클성을 정의하는 종목"이라며, 지난 42년간 30% 넘는 주가 하락이 34차례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회사의 중간값 기준 투하자본이익률(ROIC)이 4%, 자기자본이익률(ROE)은 7%에 불과하다며 "솔직히 형편없는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최근 마이크론의 급등세를 놓칠지 모른다는 불안감(FOMO)과 고평가 자산이라도 나중에 더 비싸게 사줄 사람이 있다는 심리가 뒤섞인 결과로 해석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역시 "2026년까지 완판됐다"는 기대감이 과열을 부추기고 있다고 봤다.
이번 공매도의 타이밍은 다소 아이러니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마이크론의 '트럼프 계좌' 프로그램 2억 5,000만 달러(약 3,825억 원) 투자를 공개적으로 극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의 산제이 메로트라 최고경영자(CEO)도 미국 내 2,000억 달러(약 306조 원) 이상의 메모리 투자 계획을 강조해온 바 있다.
이번 마이크론 공매도는 버리의 반도체 업종 전반에 대한 비관적 베팅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그는 앞서 지난달 30일에도 엔비디아(NVDA),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AMAT), 아이셰어즈반도체ETF(SOXX)에 대한 공매도 사실을 공개하며 AI 관련 반도체 종목들이 30%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 호실적에도 흔들린 주가
마이크론은 지난달 24일 실적 발표에서 시장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회계연도 3분기 매출 414억 6,000만 달러(약 63조 4,256억 원, 전년 동기 대비 346% 증가)를 발표하고, 4분기 매출 가이던스도 약 500억 달러(약 76조 4,900억 원)로 제시했다.
수밋 사다나 최고사업책임자(CBO)는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메모리 칩에 대한 고객 수요가 "2028년까지 거의 모든 제품군에서 공급 능력을 크게 웃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이크론 주가는 실적 발표 이후 오히려 급격히 흔들렸다.
메타 플랫폼스가 자체 클라우드 사업 구축과 잉여 AI 컴퓨팅 파워 판매를 검토 중이라는 소식, 앤스로픽의 자체 AI칩 개발 착수 소식,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의 AI 에이전트 개발 성과 부진 발언 등이 잇따르면서 하이퍼스케일러들의 설비투자(Capex) 정점론에 무게가 실린 영향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 역시 최근 고점 대비 조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 한국·중국發 증설 경쟁이 '슈퍼사이클' 종료 신호될 수도
버리는 특히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대규모 증설 계획을 "호황에서 불황으로 전환되는 신호탄"으로 해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발표한 설비투자 확대 계획이 향후 D램 공급 부족을 빠르게 해소시켜, 이르면 내년부터 시장 균형이 뒤집힐 수 있다는 관측이다.
중국에서도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D램 시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CXMT는 최소 295억 위안(약 6조 6,499억 원) 규모의 기업공개(IPO)를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지며, 이는 2022년 이후 중국 최대 규모 IPO가 될 가능성이 있다.
모간스탠리는 중국이 2028년까지 전 세계 D램 웨이퍼 증설 물량의 약 30%를 차지해 한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글로벌 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가 약 90%를 점유하는 과점 구조를 이루고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중국의 산업정책과 한국의 대규모 투자, 미국의 기술 규제 등 지정학적 변수가 이 같은 구조를 빠르게 흔들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버리는 "정말 슈퍼사이클이라면 왜 밸류에이션은 이렇게 불안정한가"라며 "정치와 공급 확대가 결합된 산업에서 안정적인 사이클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비관적 전망을 내놓았지만 현실화되지 않은 경우도 있었던 만큼, 이번 베팅 역시 향후 결과가 주목된다.
kwonjiun@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