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등록 : 2025-06-24 11:28
[서울=뉴스핌] 최원진 기자= 절체절명의 순간, 러시아는 이란의 '백기사'가 되지 못했다.
미국이 이란 핵 시설을 폭격한 다음날인 23일(현지시간)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부 장관은 급히 모스크바를 찾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긴급지원(SOS)'을 요청했지만 사실상 거부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락치 장관은 모스크바 도착 직후, 푸틴 대통령과 "공동의 도전과 위협에 대처할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러시아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됐었다.
지난 13일 새벽 이스라엘의 선제 공격으로 시작된 이란과 이스라엘의 교전은 지리적인 거리 때문에 주로 미사일과 공격용 무인기(드론)의 싸움이었다. 이에 전황은 남은 미사일과 드론 재고에 달려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던 시점이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은 아락치 장관 면담 전 모두 발언에서 이란에 대한 군사 지원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짚었다.
![]()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로이터 뉴스핌] |
푸틴은 "이번 회동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라고 발언했는데, 이는 함께 출구전략을 모색해보자는 의미이자 이란에 군사적 지원 의사가 없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러시아와 이란의 협력 관계는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권 유지를 위해 거의 10년 간 지속돼 왔다.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일으킨 전쟁에서 이란은 탄약과 포탄, 수천 대의 드론을 러시아에 제공하며 푸틴의 전쟁 수행을 돕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가는 립서비스에 그친 것으로 전해진다.
카타르대학교의 러-이란 관계 전문가인 니콜라이 코자노프 교수는 "이란은 미국에 대한 보복으로 러시아에 지원을 요청할 수 있지만 러시아는 결코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스라엘과 미묘한 균형 외교 관계를 유지 중인데다,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의 추가 제재에 취약해진 상황이라 그렇다.
특히, 우크라이나와의 실질적인 평화 협상 참여를 거부해 왔지만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유보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관계 유지를 위해서라도 이란을 공개적으로 지원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주,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이란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 이유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란이 특별히 요청을 하지 않았다"면서 답변을 피하기도 했다.
러시아에 대한 이란의 서운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충돌 후, 이란 정부는 러시아와 SU-35 전투기, Mi-28 공격헬기, S-400 방공 시스템, Yak-130 훈련기 구매 계약을 체결했지만, 실제로 인도받은 것은 훈련기 뿐이었다.
지난해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러시아가 제공한 이란의 방공 시스템 일부가 파괴됐을 때도 러시아는 몇 달 동안 이를 교체해 주겠단 의사가 없었고, 그 결과 이란 영공은 이스라엘이 쏜 미사일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올해 1월 양국은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맺는 등 표면적 관계는 한층 더 돈독해 졌지만, 북한과는 다르게 상호 방위 조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알맹이 없는 껍데기 뿐인 동맹이란 지적도 나온다.
WSJ는 "최근 전략적 파트너십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이란에 수사적 지원 외에는 별다른 제안을 하지 않고 있다"라며 "푸틴은 이란을 전적으로 지원하는 것보다, 긴장 고조를 피하고 이스라엘 및 트럼프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등 러시아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wonjc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