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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시작된 고물가·긴축 반대 시위가 유럽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재정 부담이 누적된 가운데 생활고와 복지 축소에 대한 불만이 거리의 분노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도 안심할 수 없다.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수출은 늘고 있지만, 그밖의 성장 동력은 여전히 취약하다. 청년 취업자는 47개월째 줄고 있고, 저출생·고령화로 의무지출이 불어나면서 국가채무비율은 2055년 GDP 대비 126.3%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뉴스핌은 6회에 걸쳐 반도체 호황에 가려진 한국 재정의 구조적 위험을 진단하고, 미래대응기금의 실효성을 검증한다. 아울러 전문가들과 함께 위기가 닥치기 전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해법을 모색한다. [재정 골든타임] 기획시리즈 6부작 |
[세종=뉴스핌] 김현구 기자 = 정부가 반도체 호황으로 늘어난 세수를 활용해 162조3000억원 규모의 '재정 저수지(미래대응기금)'를 조성한다.
세수가 많이 걷힐 때 재원을 비축해 미래 성장에 투자하고 불황기에는 재정 여력을 보강하겠다는 구상이지만, 실제로 얼마를 쌓고(적립), 언제 꺼내 쓰며(인출), 누가 어떻게 굴릴지(운용)에 대한 규칙이 분명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기획예산처의 2027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미래대응기금의 내년 수입은 162조3000억원이다. 이 중 실제 사업성 지출이 45조4000억원, 국채 신규 발행 축소에 12조5000억원이며, 나머지 104조4000억원은 여유자금으로 운용한다.
◆ 얼마나 쌓나…'미래 투자' 45조에 재탕·과다 논란
정부는 반도체 호황에 따른 추가 세수를 생산적 분야에 투자하면서 세수 변동성에 대비하는 장치라고 설명한다. 최근 10년간 내국세 추세를 웃도는 재원으로 경기에 따라 지출이 급변하는 문제를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기금은 청년(13조3000억원)·성장동력(14조2000억원)·지방(15조3000억원)·교육인재(10조1000억원) 등 4개 사업계정과 총괄계정으로 구성되며, 사업에는 청년 첫 취업 지원과 공공임대주택, AI·자율주행 개발 등이 담겼다.
그러나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실 분석에 따르면 기금 사업의 94%가 2028년 이후에도 예산이 드는 다년도 사업이고, 부처가 요구한 사업의 95%가 그대로 반영됐다. 신규 미래투자라기보다 이미 시행 중이거나 일반예산에서 해오던 사업을 기금으로 끌어모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신규·계속 여부보다 미래대응 기여도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입장으로, 조용범 기획예산처 차관은 8월 브리핑에서 혼인·출산 지원도 미래를 위한 필수사업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막연하게 기존에 하던 사업을 끌어와서는 안 되고, 잠재성장률로 이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형태로 사업을 구성해야 한다"며 "이 보험(기금) 규모가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정부가 명확하게 제시해야 국회 합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 쌓아만 두고 언제 꺼내나…인출 규칙이 없다
미래대응기금의 또 다른 기능은 재정 안정화다. 호황기에 적립한 재원을 세수 결손 때 일반회계에 지원해 충격을 줄이겠다는 것으로, 관련 법률 제정안과 국가재정법 개정안도 국회에 제출됐다.
쟁점은 인출 조건이다. 정부안에 세입 부족을 보전하는 전출 근거는 담겼지만, 어느 정도 세수가 줄어야 기금을 쓸 수 있는지 객관적 발동 기준은 분명하지 않다. 조 차관도 8월 브리핑에서 "어떤 객관적인 기준이 있는 건 아니다"라며 세수 결손 상황이 그때그때 달라 일률적 기준을 두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미래대응기금의 필요성이나 취지, 잠재성장률을 제고하겠다는 정책 의지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적립과 운영, 인출이 명확하게 법에 규정돼야 하는데 적립만 서술돼 있고 운영과 인출은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 가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매년 꺼내 쓰는 돈에 상한을 둔 인출 준칙을, 칠레 구리안정화기금은 구조적 재정수지 준칙을 법으로 정해 적립과 인출을 통제한다. 전문가들은 미래대응기금도 적립 규칙과 인출 규칙, 독립적 운용 거버넌스를 갖춰야 '저수지'로 기능할 수 있다고 본다.
국회 통제도 쟁점이다. 정부안은 주요 항목 지출의 30%까지 국회 사전 의결 없이 자체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는 다른 사업성 기금과 같은 수준이고, 사전 심의·의결과 초과세수 적립·활용 시 지체 없는 국회 보고로 사후 통제를 강화했다는 입장이다.
◆ "지방 몫부터 돌려달라"…국채 상환도 숙제
재원 배분도 논란이다. 중앙정부가 대규모 세수를 별도 기금으로 관리하면서 지방교부세 등 기존 배분 구조가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지방정부는 기금이 신설되면 내년 지방교부세 정률분이 기존 산식보다 약 30조5000억원 줄 수 있다고 추산했고, 이에 일부 지자체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몇 년간 세수 결손 때 지방이 지방채도 발행하고 쌓아둔 돈도 끌어다 써 지방재정이 안 좋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해 하반기 초과세수를 기금에 추가 적립하지 않고 원래 지방에 가게 돼 있는 돈을 주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기금에 편입된 일반회계 사업을 지방교부세로 돌린다면 기금 규모도 조금 줄일 수 있다"고도 제안했다.
정부는 지방계정에 15조3000억원을 배분해 지역 산업·인프라를 지원한다는 입장이지만,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쓰는 지방교부세와 특정 목적의 기금 사업비는 성격이 달라 배분 적절성을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늘어난 세수를 국채 상환에 먼저 써야 하는지도 쟁점이다. 정부는 세수를 모두 채무 상환에 쓰면 국채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김 선임연구위원도 "국채를 먼저 갚으라는 얘기가 근거가 없는 얘기는 아니다"라며 적정 배분 검토가 필요하다고 봤다.
아울러 그는 반도체 호황 이후 사업 지속성에 대해 "초과세수는 금방 사라진다"며 "일시적 세수를 항구적 세수로 오해하고 지출을 늘리면 재정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162조원 저수지가 실제 안전판으로 작동하려면 적립 규모와 인출 조건은 물론 미래투자 사업의 효과, 국가채무 관리와 지방재정 배분까지 함께 검증해야 한다.
hyun9@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