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1만 시대를 기대하던 한국 증시가 9000선의 환호를 뒤로하고 5000선대로 내려앉았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산업의 성장, 정부의 증시 부양정책에 쏠렸던 기대는 무엇을 놓쳤을까. 급등락을 거듭한 시장은 투자자에게 손실을 남겼고, 정부의 시장 개입과 국민연금 운용 판단의 적절성도 검증 과제로 떠올랐다. 뉴스핌은 [아! 코스피] 기획을 통해 한국 증시의 급등락 과정을 복원한다. 이와 함께 국내 증시의 주요 투자자인 국민연금이 어떤 원칙에 따라 자산배분과 리밸런싱을 결정했는지 살펴 국민의 노후자산을 운용하는 의사결정의 독립성과 책임성을 점검할 계획이다.
[서울=뉴스핌] 이정아 기자 = 정부가 증시 활성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고위험 투자상품의 출시를 서두르고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조정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국내 투자 수요를 늘리겠다며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허용했지만, 과열 논란이 커지자 두 달도 지나지 않아 규제 강화에 나섰다. 국민연금의 국내주식 리밸런싱 과정에서도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최근 코스피 급락을 이들 정책의 결과로 단정할 수는 없다. 글로벌 금리와 인공지능(AI) 투자 수익성 논란, 반도체 업황 우려 등 대외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다만 증시 활성화를 정책 목표로 내세운 정부가 금융상품 출시와 공적 기관투자자의 운용 판단에 어느 정도 관여했으며, 그 과정에서 위험 검토와 독립적인 의사결정이 충분히 이뤄졌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 서학개미 잡겠다며 단일종목 레버리지 허용…두 달 만에 '급제동'
정부의 적극적인 증시 정책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다.
정부는 올해 국내 증시 투자 수요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을 허용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개별 종목의 하루 주가 등락률을 배수로 추종하는 상품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지난 5월 27일 처음 증시에 상장됐다. 투자자에게 다양한 투자 수단을 제공하는 동시에 해외로 향하는 투자 수요를 국내 시장으로 돌리겠다는 정책적 목적도 깔렸다.
출시 직후 개인투자자의 자금이 빠르게 몰렸다. 그러나 거래가 단기간에 급증하면서 고위험 상품이 개인투자자의 단기 투기 수단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기초자산의 하루 수익률을 배수로 추종하는 상품인 만큼 주가가 오를 때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반대로 주가가 떨어지면 손실도 배로 커지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결국 상품 출시 두 달도 지나지 않은 7월 16일 보완대책을 내놨다. 신규 상품 상장을 중단하고 기본예탁금을 기존 1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발표했다. 관련 광고를 제한하고 매매 단위를 조정하는 등 투자자 보호 장치도 강화했다. 증시 활성화를 위해 상품 규제를 풀었던 정부가 불과 두 달 만에 다시 진입 장벽을 높이기로 한 셈이다.
시장 상황도 빠르게 달라졌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출시된 5월 27일 코스피는 8228.70이었다. 정부가 보완대책을 발표한 7월 16일에는 6820.60으로 떨어졌다. 약 50일 동안 17.11% 하락했다. 보완대책 이후에도 하락세는 이어졌다. 이달 21일 코스피는 5735.66으로 마감했다. 보완대책 발표 당시보다 15.91% 추가 하락했고,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출시일과 비교하면 30.29% 떨어졌다.
물론 이 기간 코스피 하락을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도입과 직접 연결하기는 어렵다. 글로벌 금리 상승 우려와 AI 투자 수익성 논란, 반도체 업황에 대한 경계심 등 국내외 악재가 동시에 증시를 짓눌렀다.
다만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둘러싼 정책 변화는 정부 주도의 증시 활성화 정책이 가진 한계를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증시로 투자 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해 고위험 상품의 문을 열었지만 예상보다 빠른 과열에 다시 규제 카드를 꺼내야 했기 때문이다.
상품 도입 과정도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금융위원회는 2025년 12월 대통령 업무보고에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 과제를 포함했고, 올해 1월에는 김용범 당시 청와대 정책실장이 주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대표들을 만나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을 논의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1월 28일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해외에서는 출시되는데 국내는 출시가 안 되는 비대칭 규제 문제로 다양한 ETF 투자 수요가 충족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며 "규제를 신속히 개선해 자본시장 매력도를 높이겠다"고 밝혔다.
실제 상품 출시는 빠르게 진행됐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는 당초 하반기로 예상됐던 출시 일정이 앞당겨진 데 이어 금융당국이 정한 상장 일정에 맞춰 심사까지 단축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19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심사 절차가 통상과 달랐던 이유를 묻는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4월 중순 금융위에서 상장 일정을 정책적으로 발표한 게 있다"며 "그 일정을 맞추기 위해 심사를 빨리 한 부분이 있다"고 인정했다.
실제 심사 기간도 기존 ETF보다 짧았다. 박 의원에 따르면 ETF의 평균 상장 심사 기간은 62일이며 대표지수형 ETF도 평균 43일이 걸렸다. 반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29일 만에 심사를 마쳤다. 박 의원은 "더 위험한 상품을 더 짧은 기간에 심사했다"며 심사 과정을 '변칙'과 '졸속'으로 규정했다.
절차도 통상적인 순서와 달랐다. 일반적으로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를 마친 뒤 금감원이 증권신고서를 심사하지만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거래소의 예비심사가 끝나기 전에 금감원 심사가 시작됐다. 이 원장은 이 같은 사례가 처음이냐는 질문에 "제가 확인해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상장 신청보다 정부의 출시 일정 발표가 먼저 이뤄진 점도 도마에 올랐다. 자산운용사들이 상장을 신청한 시점은 5월 19일이었지만 금융위는 나흘 앞선 15일 이미 5월 27일 상장 계획을 발표했다. 이 원장은 "4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이) 의결됐고 그때 보도자료에 이르면 5월 22일 상품 출시 예정으로 나와 있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상품의 심사와 상장 신청이 끝나기 전에 정책당국이 출시 시점을 먼저 제시하고 실무기관이 해당 일정에 맞춰 절차를 진행한 모양새가 됐다. 정부의 증시 활성화 목표가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검증하는 것보다 앞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출시 이후 금융당국 내부에서도 우려가 나왔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이 상장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은 6월 22일 이 원장은 상품 출시와 관련해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후회한다"고 말했다. 이후 시장 과열과 변동성 논란이 커지면서 금융당국은 신규 상품 상장을 중단하고 기본예탁금을 높이는 등 보완책을 잇달아 내놨다.
정책당국의 평가도 달라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9월 18일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가 어떤 과정으로 결정됐는지 세부적인 절차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부족함이 있었던 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지난 19일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일정을 맞추기 위해 심사를 빨리 한 부분이 있다"며 "해당 상품 출시가 증시 급락에 일정 부분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국내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히고 자본시장의 매력도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러나 정책당국이 출시 시점을 먼저 제시하고 심사를 서두른 사실이 뒤늦게 확인된 데 이어 출시 이후에는 금융당국 스스로 시장 충격 가능성을 인정했다.
규제를 풀어 상품을 내놓은 정부가 다시 규제를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책 결정 과정의 문제까지 인정하면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정부 주도 증시 활성화 정책의 명암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게 됐다.
◆ 국민연금에도 정부 입김…"리밸런싱, 정책에 흔들려선 안 돼"
정부의 증시 활성화 정책과 공적 기관투자자의 운용 판단 사이의 관계는 국민연금에서도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1월 국내주식 리밸런싱을 한시적으로 유예한 데 이어 5월에는 국내주식 목표비중을 14.9%에서 20.8%로 높였다. 연초 계획인 14.4%와 비교하면 6.4%포인트 상향한 것이다. 전략적 자산배분(SAA) 허용범위도 한시적으로 확대하고 일일 최대 리밸런싱 규모를 줄였다. 기금 규모 확대에 따른 시장 충격을 완화하고 장기 수익성과 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는 게 기금위의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복지부가 사실상 논의를 주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금운용본부가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에 대한 후유증과 투자 손실·성과평가에 대한 부담 때문에 적극적인 운용 판단을 하는 데 소극적인 측면이 있었다"며 "이에 복지부가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자산배분 문제를 주도적으로 논의했고, 기금운용본부의 운용 방식에도 변화를 주문했다"고 귀띔했다.
국민연금 운용에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영향을 미치는 문제는 과거 전략적 환헤지를 둘러싼 논란에서도 제기됐다.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졌던 시기 국민연금의 환헤지 전략이 환율 안정과 연결되면서 기금의 장기 수익성과 정부의 시장 안정 목표 사이의 관계가 쟁점이 된 것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은 해외투자에 만기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환헤지를 할 필요가 없다"며 "장기 해외투자는 자연헤지 효과가 있는데 정부가 환율 방어 논리를 앞세워 국민연금 자금을 활용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시장 상황이 좋을 때는 문제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상황이 반대로 움직이면 그만큼 위험도 커진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자산배분은 단기적인 증시 부양과는 다른 기준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해 매매 방식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과 가입자의 장기 수익률 및 위험관리를 최우선으로 두고 정부 정책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주장이 맞선다. 복지부의 자산배분 논의가 법정 권한에 따른 정책 검토였는지, 독립적인 운용 판단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는지가 핵심 쟁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번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사례와 국민연금 리밸런싱 사례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이 시장 질서를 어떻게 흔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며 "정책 도입 과정에서 결정권을 행사했던 인사들이 정작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국내 자본시장 선진화가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다시 한번 느꼈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금융시장 불안을 막기 위해 일시적인 시장안정 조치를 가동하는 것과 증시 상승을 정책 목표로 삼아 투자상품과 시장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의 상장 심사 과정과 국민연금의 자산배분 변경은 서로 다른 제도에 따른 결정이지만, 정부의 정책 목표와 시장 참여자의 독립적인 판단 사이에 어떤 경계를 설정해야 하는지 공통의 과제를 남겼다.
plum@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