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사에서 적군의 총탄보다 치명적인 것은 내부의 적인 '군종(軍種) 이기주의'(Service Parochialism)였다. 각 군이 국가 안보라는 본연의 목적 대신 자군(自軍)의 이익과 자존심을 우선시했을 때 끔찍한 전쟁의 대참사가 발생했다.
그래서 현대전은 육·해·공의 경계가 무너진 단일 교전 공간으로 묶이고 있다. 하지만 지휘관들을 각기 분리된 요람에서 길러내 뼛속까지 자군 중심주의를 주입하는 한국의 낡은 각 군 사관학교 체제는 그 자체로 심각한 안보 위협이다.
◆군종 이기주의가 낳은 패전과 참사
여러 나라의 사관학교와 장교 교육의 통합은 수많은 목숨을 잃고 국가가 존망 위기에 처했던 쓰라린 전쟁 실패의 뼈아픈 반성에서 출발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이자 반면교사는 일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 육군과 해군의 파벌 싸움은 비극이었다.
육·해군 간 작전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 것은 기본이었다. 바다를 건너려는 육군 보병들이 해군의 지원을 못 받자 비밀리에 육군 수송용 잠수함(마루유)과 항공모함까지 건조했다. 해군은 독자적으로 해군용 전차를 개발할 정도였다.
한 국가 안에서 육·해군이 무기를 따로 만드는 이 기막힌 군(軍) 간의 갈등이 결국 태평양 전쟁의 패망으로 이어졌다.
독일 역시 2차 세계대전에서 군종 이기주의가 낳은 치명적 참패를 겪었다. 당시 공군 총사령관 헤르만 괴링의 극단적 독점욕 탓에 해군의 핵심 전력인 유(U)-보트 잠수함대는 공군의 파벌주의에 막혀 자체 항공대를 가질 수 없었다. 결정적인 순간마다 항공 정찰과 엄호 지원을 번번이 외면당했다.
육·해·공의 유기적 협력이 붕괴된 결과 U-보트들은 대서양 해전에서 연합군의 대잠초계기에 일방적으로 사냥당하며 나치 독일 패망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다.
초강대국 미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미 공군과 해군은 폭격 주도권을 놓고 극심한 대립을 벌였다. 단일 사령관을 두는 대신 폭격 구역을 절반으로 쪼개어 해·공군이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독자작전을 펼쳤다.
그 결과 적군이 틈새에 방공망을 집중시켜 수백 대의 폭격기와 조종사를 잃었다.
1980년 이란 인질 구출 작전에서는 각 군이 무리하게 작전을 주도하려다 공군 수송기와 해병 헬기가 충돌하면서 작전을 포기했다. 1983년 그라나다 침공 때는 육군과 해군의 무전기 주파수가 달라 육군 장교가 공중전화로 해군에 항공 지원을 요청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아르헨티나의 1982년 포클랜드 전쟁 패배는 더 뼈아프다. 당시 아르헨티나는 3군 참모총장이 국가를 통치했음에도 정치적 앙숙처럼 지내며 전혀 소통하지 않았다. 해군은 순양함이 격침되자 다른 군에 알리지도 않고 함대를 본토로 철수했다.
공군은 육군과 주파수가 맞지 않아 자국 방공망에 격추당하는 팀킬이 빈발했다. 개별 군인들은 용감했지만 육·해·공이 모래알처럼 흩어진 아르헨티나 군은 하나의 적(영국군)을 상대로 '3개의 다른 전쟁'을 치르다 붕괴했다. 각 군 경쟁과 합동성 결여가 군대의 붕괴로 직결된 전형이다.
◆통합의 결단, 생도 시절부터 융합하라
이러한 역사적 참사들은 국가 안보를 위해 군종 간의 칸막이를 반드시 부숴야 한다는 대혁신으로 이어졌다.
2차대전 후 자위대를 창설한 일본 지도부는 과거 제국군의 병폐를 뿌리 뽑기 위해 1952년 단일 교육기관인 방위대학교(NDA)를 설립했다. 육·해·공 후보생들을 4년간 한 캠퍼스에 몰아넣고 똑같은 제복을 입혀 숙식하게 했다. 이로써 임관 전부터 다른 군종에 대한 배타성을 차단하고 합동성의 기틀을 강제했다.
인도는 2차 세계대전 중 북아프리카 전선 등에서 지상군 돌격만으로는 승리할 수 없으며 3군의 입체적 협력이 필수적임을 피로 깨달았다. 이에 독립 직후인 1954년 세계 처음으로 3군 통합 사관학교인 국민방위군사관학교(NDA)를 세웠다. 20살 사관생도 시절부터 3군이 같은 생활관에서 뒹굴며 부대끼지 않으면 진정한 합동작전을 이룰 수 없다고 확신했다.
미국 역시 앞선 실패를 교훈 삼아 1986년 골드워터-니콜스법을 제정해 합동군의 통합작전 지휘 체계를 강제하고 영관급에서 합동작전 교육을 강화해 강군(强軍)이 됐다.
독일은 2차 대전까지 '국가 속의 국가'로 군림했던 독일군 군사교육을 각 군 병과학교에서 분리해 실시했다. 다만 학부교육은 3군을 연방대학에 모두 모아놓고 통합교육을 한다. 각 군의 대부분 장교들이 연방대학에서 서로 부대끼며 4년간 석사학위까지 교육을 받아 제복입은 시민으로 양성된다.
◆파편화된 교육의 종언과 사관학교 통합의 당위성
과거의 합동작전이 땅과 바다, 하늘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수준이었다면 지금의 전장은 영역 간의 경계가 소멸한 단일 도메인(Single-Domain) 시대로 진입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최근 중동전쟁에서 보듯 현대전은 우주(위성)와 사이버, 공중(드론), 지·해상 무기 체계가 실시간 하나의 교전 루프(Loop)로 직결돼 결판난다.
전쟁은 이처럼 단일 공간에서 융합돼 치러진다. 따라서 지휘관들을 육·해·공이라는 분리된 요람에 가둬 양성하는 것은 치명적인 모순이다. 40대 영관급이 돼서야 참모대학에 모여 서로 협조하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는 늦다. 뇌가 가장 유연한 20대 생도 시절부터 한 캠퍼스에서 다영역적 사고를 체득해야 한다.
한국군의 현실은 어떠한가. 국방부를 일컬어 '육방부'라 자조할 정도로 특정 군이 헤게모니를 쥐고 미래 전장의 통합적 사고보다 자군의 파이를 늘리는 군종 이기주의 게임에 매몰돼 있다. 3개의 분리된 사관학교가 배양하는 배타적인 자군중심 문화는 합참과 국방부에서 극심한 알력 다툼으로 되살아난다. 과거 패전국들이 겪었던 참사의 전조가 한국군 내부에 고스란히 잠복해 있다.
인구 절벽으로 상비군 50만명 붕괴가 현실화된 지금, 분산된 사관학교를 방치한다면 전시에 3군이 서로 자군 위주 전쟁으로 참패를 당한 역사의 비극이 한반도에서 재현될 수 있다. 한국은 결단해야 한다. 인도나 일본처럼 3군 생도가 입교 후 3년 이상을 한 캠퍼스에서 동고동락하며 합동성을 체득하고 임관 전 1년은 각 군의 전술 훈련을 이수하는 통합사관학교 체제로 즉각 전환해야 한다.
군종의 낡은 칸막이를 부수지 못하면 미래 전장에서의 승리는 없다. 사관학교 통합은 3군이 하나의 뇌와 심장으로 움직이는 진정한 합동군을 창설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국가적 과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