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몇 살까지 일해야 할까요?" 중장년을 만나 상담하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이다. 50대 중반이면 아직 더 일해야 할지, 60세가 가까워지면 그만 쉬어야 할지 고민한다. 그런데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면 질문의 본질은 나이가 아니다.
"제가 가진 돈으로 앞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결국 은퇴에 대한 고민은 '몇 살에 일을 그만둘 것인가?'보다는 '그만둔 이후에도 생활할 수 있을까?'에 더 가깝다.
이미 100세 시대라는 말이 익숙해졌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정말 100세까지 사느냐가 아니라 직장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20년, 30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살까지 일해야 할까. 통계청의 2025년 고령층 부가조사에 따르면 55~79세 가운데 장래에도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응답한 사람은 69.4%였다. 이들이 희망하는 평균 근로연령은 73.4세였다. 그런데 가장 오래 근무했던 일자리를 그만둔 평균 연령은 52.9세였다. 생각보다 일찍 주된 일자리에서 나오지만,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현장에서 만나는 중장년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60세까지는 당연히 다닐 줄 알았는데 회사 사정이 달라졌습니다.", "조금 더 일하고 싶었는데 권고사직을 받았습니다.", "정년까지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조직개편이 생겼습니다."
퇴직은 내가 원하는 시점에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퇴직을 앞둔 사람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것이 바로 '재무 진단'이다. 급하게 직업이나 일자리부터 이야기하지 않는다. 먼저 개인의 자산 현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도록 한다. 부동산은 얼마나 가졌는지, 금융자산은 어느 정도인지, 대출은 얼마인지,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에서는 어느 정도의 소득이 예상되는지를 확인한다.
그리고 지출 내용도 함께 살펴본다. 한 달에 실제 얼마를 쓰고 있는지, 주거비, 식비, 보험료, 통신비, 교통비, 교육비, 여가비 등에서 필요한 지출은 무엇인지, 줄일 수 있는 지출은 무엇인지 하나씩 함께 살펴본다.
이 과정을 거치면 막연했던 퇴직 이후의 삶이 조금씩 숫자로 바뀐다. "나는 지금 한 달에 얼마를 쓰고 있고, 퇴직하면 얼마가 필요할까?" 이 질문이 중요하다. 퇴직 이후라면 더욱 현실적으로 접근해야만 한다.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 최소한의 생활비가 얼마인지부터 계산해 보는 것이다.
통계청의 2024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아직 은퇴하지 않은 가구가 예상한 은퇴 후 월평균 최소생활비는 240만 원이었다. 하지만 사람마다 필요한 생활비는 다르다. 중요한 것은 240만 원이라는 숫자 자체가 아니라 내가 최소한 얼마가 있어야 한 달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예를 들어 퇴직 이후 최소생활비가 월 240만 원인데 국민연금 등 고정적인 수입이 월 150만 원이라면 매달 90만 원이 부족하다. 1년이면 1,080만 원이다. 5년이면 5,400만 원이다. 10년이면 1억 800만 원이다.
이렇게 계산해 보면 은퇴 시점에 관한 생각이 달라진다. "60세가 되면 은퇴해야지"가 아니라, "내가 매달 90만 원이 부족하니 이 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중장년에게 '소득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라고 강조하고 싶다.
컨설팅을 해보면 이런 경우가 있다. "제가 앞으로 최소한 월급 500만 원 정도는 받아야 일을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해온 사람에게 월급이 크게 줄어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무분석을 해보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퇴직 이후 큰 자산을 추가로 만들기는 어렵지만, 기존의 소비를 줄이고 월 100만 원의 현금 소득을 꾸준히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현장에서 이런 분들에게 종종 이렇게 설명한다. "월 100만 원의 꾸준한 현금흐름은 상당한 자산이 만들어내는 월세와 같은 경제적 가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5억 원 규모의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 부동산에서 실제로 월 100만 원의 임대소득이 발생한다면 매년 1,200만 원의 현금이 들어온다. 그렇다면 별도의 큰 자산을 새로 만드는 대신 자신의 경험과 시간을 활용해 매월 100만 원의 소득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것도 하나의 노후 자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비유를 하는 이유가 있다. 중장년이 자신의 노동과 경험이 만들어내는 월 100만 원의 가치를 너무 작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월 100만 원은 1년이면 1,200만 원이다. 5년이면 6,000만 원이다. 10년이면 1억 2,000만 원이다.
무엇보다 이 소득은 퇴직 이후 가지고 있던 자산을 일부 꺼내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활용해 새롭게 만들어내는 현금흐름이다. 그래서 퇴직 후에는 '얼마짜리 일자리인가'만 볼 것이 아니라 '얼마나 지속할 수 있는 소득인가'도 함께 봐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물가 시대의 노후 준비는 조금 달라진다. 자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도 중요하지만, 매월 얼마의 현금이 주기적으로 들어오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우선 중장년에게 창업보다 재취업을 먼저 고민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창업이 나쁜 선택이라는 뜻은 아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사업 아이템이 있고 충분한 자본과 경험이 있다면 창업은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퇴직금을 가지고 충분한 준비 기간 없이 창업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퇴직금은 그동안 직장생활하면서 만들어 놓은 소중한 노후자산이다. 준비되지 않은 창업으로 이 자산을 잃게 되면 회복이 쉽지 않다.
특히 퇴직 이후에는 실패를 감당할 수 있는 자본의 여유가 줄어든다. 그래서 퇴직 후 소득이 필요하다면 먼저 자신이 가진 경험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재취업 기회를 찾아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예전과 똑같은 직장일 필요도 없다. 직급과 임금이 예전과 같지 않아도 된다. 퇴직 이후의 일은 '얼마나 많이 버느냐'만큼 '얼마나 오래 소득을 유지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중장년을 만나 보면 "이제 나이가 있어서 아무 일이나 할 수는 없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물론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다. "내가 예전과 똑같은 일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경험으로 어떤 일을 더 오래 할 수 있을까요?" 바로 이 질문이 더 중요하다.
처음부터 월 300만 원, 400만 원을 벌겠다는 목표만 세우기보다 월 100만 원, 150만 원의 소득을 꾸준히 만드는 것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소득이 5년, 10년 지속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작은 소득도 시간이 쌓이면 큰 노후자산이 된다.
그래서 은퇴를 앞둔 중장년이라면 순서를 기억했으면 한다. 먼저 자신의 자산을 분석하자. 부동산과 금융자산, 부채를 확인하고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등 앞으로 들어올 소득을 계산하자. 그다음 지출을 분석하자. 한 달에 필요한 최소생활비가 얼마인지 계산하고 줄일 수 있는 소비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족한 금액을 어떻게 채울지를 고민하자. 소비를 줄일 수도 있고, 자산을 활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다시 일을 통해 소득을 만들 수도 있다. 이때 창업보다 재취업을 먼저 살펴보기를 권한다. 특히 퇴직금을 노후자산으로 남겨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은퇴는 정해진 나이에 찾아오는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내가 가진 자산과 앞으로 필요한 소득을 다시 계산하고 일의 방식을 조정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몇 살까지 일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 정답을 하나로 말하기는 어렵다. 어떤 사람은 60세에 은퇴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70세까지 일해야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남들이 몇 살에 은퇴하는지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유지하려면 몇 살까지 어떤 방식으로 소득을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부분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가장 좋은 은퇴 준비는 퇴직하기 훨씬 전에 자신의 숫자를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는 것이다. 오늘 저녁 통장을 한번 열어보자. 그리고 배우자와 함께 계산기를 두드려 보자.
내가 정말 몇 살까지 일해야 하는지, 생각보다 답은 가까이에 있다.
*장욱희 박사는 현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와 숭실대학교 경영학부 조교수를 역임했으며, (주)커리어 파트너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방송 관련 활동도 활발하다. KBS, 한경 TV, EBS, SBS, OtvN 및 MBC, TBS 라디오 등 다수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고용 분야, 중장년 재취업 및 창업, 청년 취업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삼성SDI, 오리온전기, KT, KBS, 한국자산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서울시설공단, 서울매트로 등 다양한 기업과 기관에서 전직지원컨설팅(Outplacement), 중장년 퇴직관리, 은퇴 설계 프로그램 개발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또한 대학생 취업 및 창업 교육,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정책연구를 수행하였으며 공공부문 면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나는 당당하게 다시 출근한다'라는 책을 출간했으며, '아웃플레이스먼트는 효과적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 인사혁신처 정책자문위원회 위원, 경찰청 보건복지정책심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