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2월 24일 국무회의에서 농지가 투기 대상으로 전락했다며 농지 전수조사와 처분 명령을 지시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5월 7일 농지법 위반 농지에 대한 처분 명령을 의무화하는 개정안을 처리했고, 개정 농지법은 8월 28일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전수조사와 규제 강화로 농촌 현장에서는 혼란과 우려가 커지고 있다. 농촌의 복잡한 소유·임대차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규제라는 지적과 함께 제도 보완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농촌 현장의 목소리와 전문가 제언을 통해 농지 규제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군산·세종·포항·홍성=뉴스핌] 나병주 유재선 기자 = "자기가 농사짓던 땅을 빼앗아 청년에게 준다고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러면 결국 청년농만 미움받게 되는 거죠."
고된 농사일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포항시 청년농 김성현(41) 씨가 농지 전수조사 얘기를 꺼내자 우려를 표했다. 기존 농민의 경작지를 청년농에게 넘기는 방식으로 비칠 경우 지역사회에서 청년농만 반감을 살 수 있다고 김씨는 걱정했다.
농지 전수조사로 농심(農心)이 들끓자 정부가 내놓은 보완책이 지역 주민 간 갈등을 부추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휴경지나 불법 임대 농지를 확보해 농지은행에 위탁한 뒤 청년농 등 신규 농업인에게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방식이 자칫 기존 임차농과 청년농 간 '밥그릇 뺏기 싸움'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다.
◆ "청년농만 미움받을 수도"…농지 재배분에 갈등 우려
농지은행에서 농지를 먼저 연결받을 수 있는 청년농은 정부 발표를 환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도 표했다. 당장 농사 지을 수 있는 땅 확보 못지않게 네트워크 형성 등 농촌 지역사회 안착도 중요해서다.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 특별위원회는 2020년 '농어업 분야 청년 취·창업 활성화 방안'을 제시하면서 청년농이 겪는 애로사항으로 농지와 경영자금 확보와 함께 주거 및 생활 여건 부족을 꼽았다. 모두 지역사회 안착 실패와 깊은 연관이 있다.
김씨는 "청년농 입장에서는 농지를 쉽게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된다"면서도 "기존 농민이 경작하던 땅을 빼앗아 청년에게 준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지면 지역사회에서 청년농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김씨는 "새로 들어온 청년농은 기존 주민과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한다"며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공감대를 만드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20년 일군 임차농도 밀려날 위기…고령층엔 농지은행 절차도 부담
농지은행을 통한 농지 재분배는 기존 임차농에게도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소유주가 농지를 처분하거나 농지은행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계속 경작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어서다.
충남 홍성군 홍동면에서 만난 주형로(68) 씨는 20년 가까이 일군 경작지에서 밀려날 수 있는 처지에 놓여 있다. 주씨가 농사짓는 약 1만평은 모두 임대받은 땅이다.
주씨는 "소유자가 땅을 팔겠다고 하면 내가 우선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많은 땅을 살 돈도 없다"며 "20년 동안 농사를 지었어도 내 땅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주인이 결정하면 나갈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주씨는 자신과 같은 기존 임차농이 경작지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씨는 "농촌에는 남의 땅을 오랫동안 빌려 농사지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며 "새로운 사람에게 농지를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그 땅에서 농사짓던 사람도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 "재산인 땅 맡기는 일…신뢰 쌓인 기존 임차 관계 끊기 어려워"
기존 임차 관계를 끊고 농지은행을 통하는 일도 농민에게는 부담이다. 농촌에서 농지 임대차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에게 농사를 부탁하고 사정이 달라지면 또 다른 주민에게 맡기는 식으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바탕으로 이어져서다.
땅 주인에게는 '누가 내 땅에서 농사를 짓느냐'도 중요한 문제인 셈이다. 수년간 믿고 맡겨온 경작자가 있는데 농지은행을 거치면서 이 관계가 끊기게 된다면 선뜻 위탁하기 어렵다는 게 농민 정서다.
홍동면에 있는 한 마을 70대 이장 A씨는 "농촌에서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이웃에게 농사를 부탁하고 사정이 달라지면 또 다른 주민에게 맡기는 방식에 익숙하다"며 "농어촌공사 등 별도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하면 고령 농민들은 번거롭고 어렵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다.
농지 전수조사 이후 어떤 절차가 이어지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주민이 적지 않다는 점도 불안을 키우고 있다.
A씨는 "고령 농민들은 관련 내용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는 경우가 많지 않고 마을 방송이나 주변 사람을 통해 듣는 정도"라며 "제도가 어떻게 바뀌고 자신의 농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lahbj11@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