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조민교 기자 = 삼성전기가 차세대 유리기판 양산 일정이 당초 예상보다 늦어지자 고부가 FC-BGA를 앞세운 인공지능(AI) 반도체용 패키지기판 사업은 오히려 속도를 내는 투트랙 전략으로 재편하고 있다.
유리기판은 고객 검증과 공급망 투자를 이어가며 중장기 성장축으로 준비하되, 당장은 생산라인이 사실상 풀가동에 들어간 FC-BGA를 중심으로 AI 가속기·서버 시장의 고객과 물량을 먼저 확보하는 전략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기는 지난 3일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린 '세미콘 타이완 2026' 전략 소재 콘퍼런스에 처음 참가했다. 기조연설자로는 강두안 삼성전기 부사장이 나섰다. 강 부사장은 인텔에서 유리기판 기술 개발을 이끌었던 전문가지만 이번 행사에서는 AI 패키징 기판 전반의 확장을 전면에 내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기가 당초 2027년으로 제시했던 유리기판 양산 목표를 최근 2028년 본격 가동으로 늦춘 상황에서 이 같은 메시지가 나온 점이 주목된다. 업계에서는 유리기판 상용화가 늦어지는 만큼 당분간은 차세대 유리기판보다 이미 수요가 본격화한 FC-BGA 등 AI 패키징 기판을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유리기판은 중장기 과제로 개발을 이어가되, 당장은 풀가동과 증설이 진행 중인 AI 패키징 시장에서 고객과 물량을 먼저 확보하는 데 무게를 두겠다는 것이다.
◆ 유리기판 일정 늦어져도…공급망 구축은 계속
삼성전기의 유리기판 사업은 당초 예상보다 속도가 늦어지고 있다. 회사는 세종사업장 파일럿 라인에서 시제품을 생산해 일부 고객을 대상으로 기술 승인과 샘플 평가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최근 당초 2027년으로 제시했던 양산 목표가 2028년 본격 가동으로 조정됐다. 상용화 시점이 사실상 1년가량 늦춰진 것이다.
삼성전기는 일정 지연의 배경으로 고객사의 품질·신뢰성 검증 장기화를 들고 있다. 고객 평가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만큼 대규모 양산 설비 발주와 생산라인 구축을 본격화하기도 이르다는 설명이다.
반면 외신에서는 보다 부정적인 관측도 나온다. 디지타임스는 지난달 삼성전기 유리기판 시제품이 고객사의 신뢰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상용화 일정이 다시 늦어졌다고 보도했다.
유리기판 상용화는 업계 전반에서도 쉽지 않은 과제로 꼽힌다. 인텔과 앱솔릭스, LG이노텍 등 주요 기업들이 개발과 양산 준비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대량생산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유리기판은 대면적화와 미세 배선에 강점이 있지만 깨지기 쉽고 TGV, 도금, 접착 등 공정에서 높은 수율과 신뢰성을 확보해야 해 양산 난도가 높다는 평가다.
삼성전기는 양산 일정 조정과 별개로 공급망 구축은 이어가고 있다. 지난 7월 스미토모화학 자회사 동우화인켐과 글라스코어 제조 합작법인 '글라셈(GlaSSEM·가칭)' 설립을 결정했다. 삼성전기는 3191억원을 투자해 지분 66.2%를 확보한다. 세종 파일럿 라인에서 고객 검증을 이어가는 동시에 향후 양산에 필요한 핵심 소재 공급 기반을 미리 갖추는 것이다.
◆ 유리 넘어 패키징 기판 전반으로…FC-BGA는 풀가동·증설
유리기판이 고객 검증에 시간이 걸리며 본격적인 양산까지 속도를 내기 어려운 반면, 기존 AI 패키징 기판인 FC-BGA는 수요가 생산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삼성전기가 이번 세미콘 타이완에서 유리기판 자체보다 첨단 패키징 기판 전반을 내세운 것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삼성전기는 고부가 FC-BGA를 중심으로 AI 가속기와 서버 CPU용 패키지기판 사업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지난 1월 CES 2026에서 당초 2027년으로 예상했던 FC-BGA 생산라인 풀가동 시점을 올해 하반기로 앞당겼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달에는 삼성전기의 FC-BGA 생산라인이 하반기 들어 완전 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생산 지표에서도 높은 수요가 확인된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기의 패키지기판 전체 생산능력은 36만6000㎡, 생산실적은 32만5000㎡로 가동률이 89%에 달했다. 증권가에서는 2분기 FC-BGA 가동률이 이미 90% 초반까지 올라선 것으로 추정했다. AI 반도체의 대형화로 서버급 FC-BGA에서도 대면적·고다층화와 휨(Warpage) 제어 등 고난도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증설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삼성전기는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글로벌 빅테크용 AI 가속기와 서버 CPU용 신제품 양산을 확대하고 국내외 생산능력 증설을 통해 고부가 기판 공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FC-BGA 고객사와 장기공급계약을 협의하면서 이에 맞춘 생산능력 확대도 진행 중이다.
삼성전기는 FC-BGA와 유리기판을 각각 현재 주력 사업과 차세대 사업으로 구분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FC-BGA 등 AI 패키징을 주력 사업으로 하면서 차세대 사업으로 유리기판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최근 두 사업의 속도 차이에 주목하고 있다. 유리기판은 고객 평가와 기술 검증에 시간이 걸리며 상용화 진척이 더딘 반면 FC-BGA는 AI 서버와 가속기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가동률 상승과 증설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기가 유리기판 개발은 중장기 과제로 이어가되, 당장은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AI 패키징을 전면에 내세워 고객과 물량을 먼저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유리기판은 기술적으로 중요하지만 본격적인 시장 형성까지 시간이 더 필요한 반면 AI 서버용 FC-BGA는 이미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며 "지금은 유리기판을 계속 준비하면서도 당장 열린 AI 패키징 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쪽에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mkyo@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