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기락 기자 = 현대자동차가 1조원대 생산 차질을 감수하며 파업과 교섭을 반복하는 사이 기아는 현대차보다 높은 임금안을 선제적으로 내놓으며 '무분규 타결'을 시도하고 있다. 같은 그룹 안에서 현대차 노조는 파업으로 추가 양보를 압박하고, 기아 사측은 높은 보상안으로 파업 명분을 줄이는 정반대 협상 전략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기아가 현대차보다 먼저 임단협을 타결할 경우 2011년 이후 15년 만에 '기아 선타결'이 현실화한다. 현대차 합의안을 기준으로 기아가 뒤따르던 현대차그룹의 오랜 임단협 공식에도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18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이날 오후 2시 제16차 임금협상 본교섭을 진행 예정으로, 교섭 이후 추가 파업 여부와 수위를 결정할 전망이다.
반면, 기아 사측은 현대차의 기존 제시안보다 높은 첫 일괄제시안을 내놓으면서, '현대차 선타결-기아 후타결'로 굳어진 그룹 임단협의 순서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 노사가 41일 만에 본교섭을 재개하면서 양사의 타결 구도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 현대차, 파업 수위 높이다 본교섭 재개
현대차 노조는 지난달 13~15일 주·야간조별 하루 2시간 부분파업을 시작으로, 20~22일과 29~31일에는 각 4시간씩 생산라인을 멈췄다. 휴가 뒤인 이달 12~13일에도 각 4시간 파업했고, 14일에는 각 6시간으로 수위를 높였다.
현대차는 7월 세 차례 부분파업과 토요특근 거부 등으로 4만2510대의 생산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했다. 매출 손실 규모는 약 1조1200억원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다.
다만, 현대차 노조는 이날 예정했던 주·야간조 각 6시간 파업은 유보했다. 회사 측의 교섭 재개 요청을 받아들여 이날 오후 제16차 본교섭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는 호봉승급분을 제외한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과 지난해 순이익(10조3648억원)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 계산하면 3조원을 넘는 규모다.
또 ▲완전월급제 도입 ▲상여금 750%에서 800%로 인상 ▲주 4.5일제 ▲정년연장 ▲과거 노조 활동으로 해고된 조합원의 복직 ▲인공지능(AI)·로봇 도입 시 고용 보장 등도 별도 요구안에 담았다.
이에 사측은 기본급 8만9000원 인상과 성과금 350%+1000만원, 자사주 15주 지급을 3차 제시안으로 내놨지만 비임금 쟁점까지 얽히며 노조와 접점을 찾지 못했다.
◆ 기아, 현대차 웃도는 첫 제시안
기아는 다른 길을 택했다. 기아 노조는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중노위 조정중지 결정을 거쳐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했지만, 아직 생산라인을 세우지 않고 사측과 교섭을 지속하고 있다.
기아 사측은 지난 13일 8차 본교섭에서 기본급 9만3000원 인상, 성과격려금 350%+1100만원, 자사주 45주를 담은 첫 일괄제시안을 냈다. 현대차의 3차안과 비교하면 기본급은 4000원, 정액 성과금은 100만원, 자사주 수량은 30주 많다.
기아 노조의 요구도 만만치 않다.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 ▲지난해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주 4.5일제 ▲정년 65세 연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측이 협상 초반부터 비교적 높은 수준의 보상안을 제시하면서, 노조가 실제 파업보다 추가 보상과 비임금 쟁점 조율에 집중할 공간이 생겼다는 분석이다.
◆ '현대차 선타결' 공식 바뀌나
기아는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했다. 올해도 파업 없이 합의한다면 6년 연속 무분규 기록을 세우게 된다.
관건은 타결 순서다. 기아가 현대차보다 먼저 임단협을 마무리한 최근 사례는 2011년이다. 당시 기아는 8월 19일 임금협상을 타결했고, 현대차는 같은달 24일 잠정합의안을 마련한 뒤, 26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과시켰다. 이후에는 현대차가 먼저 합의안을 만들고, 기아가 이를 참고하는 흐름이 통상적인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기아가 먼저 잠정합의안을 도출한다면 단순한 일정상의 선후관계 이상이다. 현대차가 그룹 노사관계의 임금 기준점 역할을 해온 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기아의 선타결 가능성을 단정하기는 이르다. 현대차가 본교섭 재개를 계기로 추가 임금안을 내놓고 비임금 쟁점에서 절충안을 마련한다면 단기간 타결 가능성도 남아 있다. 반대로 현대차가 파업 압박을 통해 더 높은 합의안을 끌어낸다면, 기아 노조 내부에서 추가 요구가 커질 여지도 있다.
올해 현대차·기아 임단협의 승부는 '누가 더 많이 받느냐'보다 '누가 먼저 타결해 다음 협상의 기준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비임금 쟁점 협상과 기아의 무분규 타결 가능성이 맞물리면서, 현대차그룹 노사관계의 오래된 공식이 시험대에 오른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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