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이영란 편집위원/미술전문기자=이제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궁금한 사항이 있거나 확인해볼 사항이 있으면 인공지능(AI)에게 묻게 된다. 제깍제깍 원하는 답이 나오니 날이 갈수록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인공지능이 내놓은 답변과 정보 중에는 오류도 적지 않고, 실소를 머금게 하는 엉뚱한 내용도 있지만 일단 손쉽고 빠르니 자동으로 AI에 기대게 된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이같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창작과 기술의 상관관계를 미술아카이브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관장 최은주)의 분관인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알렉사에게'라는 타이틀로 전에 없는 특별한 기획전을 열고 있다.
오는 7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전시실에서 열리는 이 전시는 정보를 통해 현실을 인식하는 과정이 인공지능(AI) 기술에 의해 자동화되고 있는 작금의 정보 탐색과정을 짚어본 전시이다.
이번 전시에는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 기술매체 환경의 변화를 목도하며, 정보매체의 시각성을 탐구했던 1세대 실험미술가인 성능경(b.1944)을 필두로 강동주(b.1988), 구동희(b.1974), 남화연(b.1979), 노송희(b.1992), 박지호(b.1994), 백정기(b.1981), 전소정(b. 1982) 등 총 8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의 예술적 실천에 주목하며 정보화된 오늘날의 현실구조를 비평적 시각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 주제기획전이다.
여기서 '미술아카이브에서 왜 이런 기획전을 열고 있을까' 궁금해 하는 이들도 있겠다. 그런데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는 '수많은 미술기록'과 '예술'이 함께 하는 미술관이다. 평창동 언덕에 홍제천을 바라보며 자리한 미술아카이브는 여러 기관과 단체가 남긴 한국 현대미술의 발자취를 좇아 수많은 기록과 자료를 선별해 수집하고 보존하고 연구하는 기관이다. 또한 이같은 아카이브를 매개로 한 활동을 통해 다양한 사용자들과 관계를 맺고 예술의 틀을 마련한다. 여기에 더해 아카이브에 기반한 기획전시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알렉사에게' 역시 이에 해당되는 프로젝트다.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이었던 '알렉사(ALEXA)'를 아세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학예연구팀이 전시제목으로 채택한 '알렉사'는 인류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한곳에 수집하고자 했던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을 가리킨다. 또한 세계 최대 규모의 클라우드 기업인 아마존이 서비스 중인 '대화형 AI 플랫폼'의 명칭이기도 하다. 따라서 알렉사는 이는 과거부터 최근까지 인간의 정보수집 및 탐색 방식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단어다.
과거 신문과 라디오에서부터 TV, 개인용 컴퓨터, PC통신과 무선 인터넷을 거쳐 오늘날의 스마트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 인터페이스로 구성되는 연결망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구조원리를 사용자가 점점 파악하고 따라가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검색엔진과 생성형 인공지능 챗봇 등 사용자 친화적 알고리즘에 기반한 인터페이스는 제공하는 정보의 수준과 맥락을 임의로 재구성하며, 때때로 정보를 통한 인간의 현실인식 과정에 '구조화된 제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기술매체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온 동시대 미술가들의 실천을 통해 관객에게 능동적인 현실 인식과 정보탐색의 방식을 다채롭게 제안하고 있다.
8명의 전시 참여작가들은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약 50년의 기술변화 속에서 정보 인터페이스가 야기한 제약을 거꾸로 '창작의 조건'으로 전유하며, 정보화된 현실의 구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을 출품했다. 이러한 창작의 실천 속에 깃들어 있는 정보들은 시대변화에 앞서는 지표가 되거나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는 역사적 맥락을 새롭게 형성하며 관객에게 능동적인 정보탐색자가 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즉 한번쯤 일방적으로 쏟아지는 정보들을 되짚어보거나 살짝 비틀어 보며 내 시각으로 생각해볼 틈을 열어보이고 있는 것.
▲'보낸 편지함', '받은 편지함' 두 섹터로 구성된 전시
전시는 이메일 인터페이스에서 착안해 '보낸 편지함'과 '받은 편지함' 두 개의 구조로 짜여졌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매일 접하는 단어라 친근하면서도, 두 섹터가 어떻게 대비될지 호기심이 일게 된다.
'보낸 편지함'이 과거에 발신한 정보를 다시 살펴보는 공간이듯 전시실1에서는 지나쳐온 정보 속에서 현실이 인식되는 조건 자체를 되돌아보는 작업을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구동희 작가가 이 섹터를 위해 이번에 제작한 15분 길이의 영상작품 '캐스케이드'(2026)는 교각과 수로, 인공적인 구조와 자연의 움직임이 중첩되는 장면을 주요한 시각적 단서로 삼고 있다. 작가는 TV, 인터넷 등 대중적으로 통용되는 정보 인터페이스를 경유하여 각종 정보와 이미지를 수집하는 가운데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물과 현상들을 가로지르는 무의식적인 경로를 가설해 나갔다.
예를 들면 베트남의 호수와 바다, 한강의 다리 등을 직접 촬영해 서로 다른 맥락에서 생성된 푸티지(footage)를 섞고 연결하는 식이다. 따라서 단일한 서사로 통합되지 않는 구동희의 이번 작업은 이미지가 전이되고 이어지는 방식, 그 연쇄구조가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캐스케이드'란 본래 폭포나 낙하하는 물줄기, 또는 연쇄적인 전개를 뜻하는 단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데이터의 계층적 처리과정을 설명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노송희 작가의 장장 4시간 53분에 달하는 영상작업도 감상할 수 있다. 노송희는 다양한 기관과 개인이 제공한 아카이브를 재구성해 그 자료 속에 여러 시선들과 교차하는 자신의 관점을 동적인 시점의 영상 설치작업으로 구현해온 작가다. 이번에 출품한 '드리프트 드래프트'는 반복적인 입력과 출력행위를 통해 원본을 디지털 정보로 변환하고 다시 종이에 프린트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보 순환경로의 형성과정을 짚어본 신작이다.
이번에 노송희는 자신이 수집한 자료들 중 단 하나의 자료에서 출발했다. 과거 독일의 어느 여행지에서 구매한 한 장의 꽃 사진엽서를 평판 스캐너로 스캔한 후, 디지털 정보로 변환된 이미지를 잉크젯 프린터로 종이에 인쇄하고 이를 다시 같은 방식으로 입력 출력하는 과정을 원본 이미지가 상실될 때까지 계속 반복했다. 하나의 원본은 스캔 인쇄와 같은 기술을 통해 반복적으로 재현되고 복제됐다. 이같은 일련의 왕복운동을 수행한 결과는 수많은 차이를 동반한 다량의 자료생산으로 이어졌으며 작가는 이러한 과정 전체를 다각도로 기록한 영상과 함께 재구성했다.
'드리프트 드래프트'라는 제목은 '표류'와 '초안'(drift)을 뜻하는 두 단어를 합성한 것이다. 이는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입력과 출력의 과정이 끊임없이 흐르며 이동하는 초안의 상태이자, 작가 작업의 조건을 의미한다. 노송희는 원본이 다른 양태로 전환될 때 발생하는 재현불가능의 문제보다, 해당 정보가 공간, 데이터, 코드, 시간과 같이 다른 상태로 이동하는 순환경로를 감각해내는 과정의 수행성에 집중하고 있다.
한편 '받은 편지함'은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 쌓이는 자료 저장공간을 지칭한다. 전시실2에서는 한 시대의 편린을 수집하고 색인형식으로 재구성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동시에 관련정보를 역사적 자료로 추출해 대안적 아카이브로 재해석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정보로 재구조화되어 있는 당대 현실을 관람객 스스로 파헤쳐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섹터의 출품작 중에는 성능경의 1981년 작품인 '현장6'이 관심을 모은다. 작가의 대표작 중 하나인 '현장' 연작은 보도사진 속 특정정보를 강조하고자 화살표, 점선 등의 지표를 사용하는 신문의 편집기법을 전유하고 있다. 보도사진을 재촬영한 필름 위에 기존 편집의도를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기호를 덧그린 후 작가는 확대 인화한 사진을 설치문법으로 재구성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소장 중인 성능경의 '현장6'은 1978년부터 1981년까지의 신문기사에서 수집한 30컷의 필름 위에, 임의의 점선을 추가한 후 점선의 궤적을 하나로 연결한 작업이다.
각각의 사진들은 별개 기사에서 추출됐지만 사진 속 점선들이 설치를 통해 연결되면서 마치 하나의 '지도'처럼 변주됐다. 이러한 지도의 이미지는 '현장' 연작에 여러가지 방식으로 흩어져 있는 각각의 사건들이 본질적으로는 한 시대의 지형도를 그리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 연작을 통해서 재촬영된 보도사진 대부분은 의도적으로 출처가 지워져 있지만 작가가 예외적으로 밝힌 일부 기사를 토대로 작업 너머의 시대상을 그려볼 수 있다.
성능경의 '현장6'이 이번 '알렉사에게'전에 포함된 것은 정보 수집에 기반한 동시대 미술실천과 그 결과물로부터 한 시대의 아카이브를 추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기획팀은 '현장6'과 연계된 신문 아카이브를 새롭게 찾아나섰다. 작업에 포함된 이미지를 실마리삼아 디지털 아카이브에서 각각의 기사 원문을 역추적했고 그렇게 찾아낸 총 26일 분량의 신문 아카이브를 종이신문 형식으로 재제작해 전시실2 한편에 배치했다. 이에 관람객 누구나 기사를 직접 찾아볼 수 있어 작품의 입체성을 더했다.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전시실2의 높은 벽면을 활용한 박지호의 작업은 새롭고 흥미롭다. 박지호는 노동집약적인 방식으로 디지털 이미지를 재가공하거나 생성형 인공지능을 직접 코딩하면서 디지털 데이터의 물질성과 정보 처리 과정의 수행성을 탐구해온 작가다. 이번에 선보인 '하나부터 열까지'는 딥 러닝 알고리즘에 카메라와 펜 플로터를 결합한 드로잉 머신에게 특정한 '그리기 방식'을 학습시키는 작업이다.
이 머신은 작가가 디지털 데이터로 입력한 이미지를 물리적 표면 위에 선으로 재현한 후, 그것을 카메라로 다시 인식하며 그리기 방식을 학습해 나간다. 펜 플로터를 통한 출력과 카메라를 통한 입력이 반복될수록 그리는 방식도 변화하지만 스스로 생성한 드로잉 이미지를 단순히 되먹임하는 방식으로는 생산적인 학습이 이뤄지지 않는다. 때문에 작가는 출력과 입력 사이에 개입해 머신이 그려놓은 드로잉을 보완하거나 학습 난이도에 걸맞게 알고리즘의 파라미터를 조금씩 수정해 나간다. 자신이 생각하는 드로잉의 감각에 한걸은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머신을 지도편달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번에 박지호 작가는 선배 미술가인 홍승혜의 2003년 작품인 '유기적 기하학'을 학습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그의 연작인 '하나에서 열까지'는 기계적인 알고리즘과 대화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홍승혜의 미학과 또다른 접점을 이루며 새로운 방식의 '배움'을 모색하고 있다.
기획팀은 전시기간 동안 관람객이 작품을 참여적인 방식으로 경험하고, 정보 인터페이스의 조건에 따라 재구성된 현실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성능경 작가의 퍼포먼스가 개막일에 열렸으며, 박지호 작가는 관객과 함께 AI이미지 생성기술을 구조적으로 살펴보는 워크숍을 진행했다. 전시기간 동안 전시의 이론적 배경을 폭넓게 해석해볼 수 있는 강연 프로그램이 열린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인공지능 기술의 확산 속에서 일상의 정보 탐색과정을 돌아보는 전시 '알렉사에게'를 통해 다양한 인터페이스로 매개된 현실을 관객 여러분 각자의 질문과 방법으로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 도슨팅 앱을 통해 음성으로 작품해설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전시 이해를 돕기 위한 정보와 자료를 미술관 공식SNS를 통해 제공 중이다. 상세한 정보는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무료관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