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태훈 기자 = 하나증권은 8일 보고서를 통해 이날 한국 증시가 '블랙 먼데이' 공포에 직면할 수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이번 조정을 경기 침체 신호가 아닌 외환 불안·금리 재가격화·반도체 차익실현이 동시에 겹친 압축 조정으로 규정했다. 공포에 동참하기보다 환율 안정 여부를 확인하며 주도주를 다시 살 기회로 접근해야 한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하나증권은 이번 불안의 출발점을 주식이 아닌 외환시장으로 지목했다. 달러인덱스가 100선을 회복했고 달러/원 환율은 1560원 안팎까지 급등했다. 김두언 하나증권 연구원은 "외국인은 주가보다 환율을 먼저 본다"며 "원화 약세가 멈추지 않으면 수급은 흔들리고, 수급이 흔들리면 좋은 실적도 잠시 뒤로 밀린다"고 설명했다.
금리도 추가 부담 요인이다. 미국 5월 고용지표 호조로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한 가운데, 6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케빈 워시 체제의 첫 시험대가 되면서 시장은 금리 인하보다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김두언 연구원은 "이번 하락은 실적 붕괴가 아니라 할인율 상승의 결과"라고 짚었다.
충격은 반도체에서 가장 크게 나타났다. 지난 5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6.4%, 9.9% 하락했고, 마이크론도 이틀간 20% 가까이 급락했다. 엔비디아의 차세대 인공지능(AI) 플랫폼 Vera Rubin NVL72 관련 메모리 탑재량 축소 우려도 겹쳤다. 시장조사기관 SemiAnalysis는 Vera Rubin NVL72의 LPDDR5X 탑재량이 기존 54TB에서 27TB로 낮아질 수 있다고 추정했고, 시장은 이를 메모리 수요 둔화 신호로 해석했다.
반면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이 같은 해석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록호 연구원은 "수요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공급이 따라가지 못할 만큼 수요가 커진 것"이라며 "엔비디아가 LPDDR 탑재량을 줄인다면, 이는 AI 수요 둔화가 아니라 Vera Rubin 출하를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공급 제약 대응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
실제 수급 불균형의 심각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Vera Rubin 물량이 본격화되는 2027년에는 엔비디아의 LPDDR 필요량이 전체 공급능력의 36%에 달할 수 있다. Vera CPU 별도 판매까지 반영하면 필요 물량은 공급능력의 절반 이상으로 추산된다. 탑재량이 절반으로 줄어도 랙당 27TB로, 현행 Grace Blackwell NVL72의 18TB 대비 여전히 50% 증가한 규모라는 점도 지적했다. 김록호 연구원은 "엔비디아발 LPDDR 수요는 D램 블렌디드 평균판매단가(ASP) 상승을 계속 견인할 수 있다"며 "메모리 업체들의 실적 추정치에도 추가 상향 여지가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지정학 리스크와 관련해서는 중동 상황이 봉합 국면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 완충 요인으로 꼽았다. 미국과 이란의 교전에도 국제유가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시장이 전쟁 확산보다 봉합 가능성을 더 크게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하나증권은 이번 주 변수로 미국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10일), 스페이스X 상장(12일), 일본은행(BOJ)의 금리 인상 가능성(15일)을 꼽았다. 물가가 예상을 웃돌면 금리 공포가 재부각될 수 있고, 역사상 최대 규모로 거론되는 스페이스X의 기업공개(IPO)는 기존 AI 주도주의 유동성을 흡수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에 하나증권은 개장 직후 투매에 동참하지 않을 것, 달러/원 환율이 1560원대에서 추가 급등하는지 확인할 것, 7월 실적 가시성이 높은 메모리 대표주와 AI 인프라 병목 기업을 선별할 것, 코스닥 성장주는 환율 안정 이후 접근할 것 등을 대응 원칙으로 제시했다.
김두언 연구원은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어 "AI 투자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시장의 기대가 너무 앞서간 것"이라며 "이번 조정은 경기 침체의 예고가 아니라 과열을 식히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실적이 살아 있고, 유가가 눌리며, 환율이 진정된다면 6월의 블랙 먼데이는 추세의 종착역이 아니라 좋은 기업을 싸게 사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며 "공포는 소음이고 실적은 신호다. 소음이 커질수록 신호를 사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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