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여러분이 들으신 건 제가 아니라 제 AI 클론이었습니다."
올해 4월, 259억 달러 자산을 운용하는 Customers Bank의 CEO 샘 시두가 어닝콜에서 실적 발표를 30분간 진행했다. 목소리도 말투도 분명 그였다. 성공적인 어닝콜을 마친 후 그가 직접 '디지털 클론'의 발표 였음을 밝혔다.
나의 목소리, 말투, 지식, 심지어 얼굴까지 복제한 AI가 내 대신 말하고, 팔고, 설득하는 '디지털 클론' 서비스가 실리콘 밸리에서 유행이다. Delphi, Tavus, HeyGen 같은 스타트업 들이 상업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예컨대 크리에이터가 자신의 유튜브 영상, 팟캐스트, 블로그를 학습 데이터로 넣으면 1시간 안에 '나처럼 말하는 AI'가 완성된다. 손오공처럼 분신을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 그야 말로 딱 이다. 월 29달러면 기본 아바타 영상이, 월 79달러면 실시간 화상 대화까지 된다.
스냅챗 인플루언서 캐린 마조리는 팬들에게 분당 1달러로 자신의 클론과 대화하는 서비스를 만들어 첫 주에만 약 7만 달러를 벌었다. 몸이 하나인 게 아쉬운 CEO들도 선호한다. Klarna와 Zoom의 CEO도 어닝콜에 클론을 내보냈다. 메타는 저커버그를 만날 수 없는 직원들을 위해 'AI 저커버그'를 만들었다. 클론 서비스 대표주자 HeyGen은 첫 매출 100만 달러를 올린 지 29개월 만에 1억 달러를 넘겼다.
기술의 논리는 단순하다. 당신의 시간은 하루 24시간이지만, 클론의 시간은 무한하다. 더구나 사람들이 구별하지 못한다. 그래서 유리한 점도 있고 결정적인 문제가 되기도 한다.
요즘 한창 관심을 끄는 AI 에이전트가 '무엇을 해주는' 도구라면, 디지털 클론은 '내가 되어주는' AI다. 에이전트의 실수는 기술 문제이고 클론의 실수는 인격 문제다.
인플루언서 캐린 마조리의 클론은 첫 주에 약 7만 달러를 벌었지만, 통제되지 않는 성적 대화가 이어지자 마조리는 출시 8개월 만인 2024년 초 서비스를 직접 종료했다. "클론이 무슨 말을 했는지 보다, 클론이 맞장구를 쳤다는 사실이 더 충격이었다"고 그녀는 회고했다. 클론이 한 말이었지만, 그녀의 모습과 목소리와 인격을 가졌기에 모든 비난은 본체인 그녀에게 쏟아졌다. 클론이 내 이름으로 말하는 이상, 그 말의 결과는 내 것이 된다. '도구의 실수'라는 변명은 전혀 통하지 않는다.
한국은 이 지형도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다. 딥브레인AI는 2016년부터 AI 아바타 기술을 개발해 MBN 김주하 AI 앵커, YTN 변상욱 AI 앵커 등을 만들었다. AI 은행원, AI 쇼 호스트, AI 민원 안내원이 금융·공공·미디어 현장에 이미 배치됐다. B2B 기술력은 세계 수준이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처럼 전문가나 인플루언서가 자신의 지식을 학습시켜 유료로 팬과 소통하는 개인 클론 서비스는 없다. 기술이 산업이 되기도 전에 범죄가 먼저 도착했기 때문이다.
경찰청 국감 자료에 따르면 국내 딥 페이크 성범죄는 2022년 160건에서 2024년 1,202건으로 폭증했고, 2025년은 9월까지 이미 1,318건으로 전년을 넘어섰다. 미국 사이버보안 업체 시큐리티 히어로의 2023년 조사에서는 딥페이크 성착취 물 피해자의 53%가 한국인으로 나타났으며, 최다 표적이 된 10명 중 8명이 한국인 가수와 배우였다.
합성 목소리로 금전을 요구하거나, 아이돌 얼굴로 성적 콘텐츠를 만들고, 배우의 목소리를 본떠 투자 사기를 벌이는 방식이다. 이에 연예매니지먼트협회와 VFX 업계가 손잡고 연예인의 얼굴·목소리를 '디지털 DNA'로 사전 등록해 무단 복제를 차단하는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합법적 클론 서비스가 부재한 공백을 불법 복제가 채우고 있는 구조다. '나보다 나를 더 잘 파는 AI'가 등장하기도 전에, '나를 사칭하는 AI'가 먼저 범람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로서는 답은 없다. 생성형 AI의 예측 불가능성은 구조적 문제다. 아무리 '엄격 모드'를 설정해도 충분히 집요한 사용자 앞에서 클론은 예상치 못한 말을 내뱉는다. MIT 테크놀로지 리뷰는 "클론에게 분별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가르치는 것은 아직 SF"라고 단언했다.
클론은 나의 과거를 학습한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과 말투를 재현하지만, 오늘의 통찰과 어제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은 없다. 클론은 나의 정수가 아니라 나의 데이터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복제본이 아니라, 나의 박제에 가깝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구별하지 못한다. 생체인증 보안 기업 iProov가 2025년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딥페이크임을 미리 고지 받고도 모든 콘텐츠를 정확히 식별한 사람은 0.1%에 불과했다.
미국은 올해 5월에야 비동의 AI 합성 영상을 범죄화 하는 연방법을 시행했다. 한국은 AI 기본법이 통과됐지만 딥페이크 사기·초상권 침해·저작권 위반 등 신종 AI 범죄에 대응하는 법은 여전히 비어 있다. '합의된 클론이 합의되지 않은 말을 했을 때' 누구의 책임인지는 아직 어느 나라에서도 정리되지 않았다.
디지털 클론 기술을 막을 수는 없다. 월 2만~3만 원이면 누구나 자신의 클론을 만들 수 있는 시대, 핵심 질문은 '막을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다. 클론임을 명시하는 공시 의무, 발언 범위를 제한하는 거버넌스, '디지털 페르소나 권리'에 대한 입법 논의가 시급하다.
클론은 나보다 지치지 않고, 나보다 일관되며, 어쩌면 나보다 나를 더 잘 팔 수 있다. 하지만 클론이 실수할 때 대가를 치르는 것은 나다. 기술은 복제를 가능하게 했지만, 책임까지 복제하지는 못했다.
기술이라는 화려함 뒤에 숨은 책임은 언제나 인간의 몫이다.
◇하민회 이미지21대표(미래기술문화연구원장) =△경영 컨설턴트, AI전략전문가△ ㈜이미지21대표 △경영학 박사 (HRD)△서울과학종합대학원 인공지능전략 석사△핀란드 ALTO 대학 MBA △상명대예술경영대학원 비주얼 저널리즘 석사 △한국외대 및 교육대학원 졸업 △경제지 및 전문지 칼럼니스트 △SERI CEO 이미지리더십 패널 △KBS, TBS, OBS, CBS 등 방송 패널 △YouTube <책사이> 진행 중 △저서: 쏘셜력 날개를 달다 (2016), 위미니지먼트로 경쟁하라(2008), 이미지리더십(2005), 포토에세이 바라나시 (2007)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