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전미옥 기자 =고환율 국면이 이어지는 가운데 은행권이 달러예금 금리를 잇달아 낮추고 있다. 환차익을 노린 달러 수요가 급증하자 외화 자금 수요 속도를 조절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오는 15일부터 '위비트래블 외화예금'의 달러 기준 금리를 현재 연 1%에서 0.1%로 0.9%p(포인트) 인하한다.
위비트래블 외화예금은 환전 수수료 무료 혜택을 내세운 해외여행 전용 계좌로, 위비트래블 체크카드와 연동돼 있다. 환율 변동에 따른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외화보통예금(우리은행 이날 기준 연 0.01%) 대비 높은 금리(연 1%)를 제공해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최근 달러/원 환율 고공 행진이 장기화되면서 환차익 목적의 외화예금 유입이 급증하자 은행이 여행객의 실수요를 끌어들이기 위해 제공해 왔던 우대금리를 사실상 철회한 것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트래블 체크카드는 고객 1인당 평균 2~3개 이상 보유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시장인만큼 당행은 고객의 최우선 선택 요인으로 보기 어려운 '외화예금 금리' 보다는 체감 혜택이 큰 '공항라운지 무료 프로모션'을 연장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주요 시중은행의 외화정기예금 금리도 줄줄이 내리는 추세다. 이날 거주자의 달러 6개월물 기준 우리은행의 외화정기예금 금리는 연 2.9%로 지난해 1월(8일 기준) 3.7% 대비 0.8%p 낮아졌다.
같은 기준으로 KB국민은행의 외화정기예금 금리는 이날 연 3.18%로 지난해 1월(연 3.94%) 대비 0.76%p 줄었고 하나은행의 외화정기예금 금리도 이날 연 2.92%로 지난해 1월(연 3.68%) 보다 0.76%p로 감소했다.
신한은행의 외화정기예금 금리는 이날 3.21%로, 지난해 1월(연 3.93%) 대비 0.72%p 떨어졌다. 외화보통예금 금리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모두 0.01%로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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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이 해외여행 전용 외화예금의 우대금리를 없애고, 달러정기예금 금리를 잇달아 낮추는 배경에는 외화 유동성 관리 부담이 자리하고 있다. 고환율 국면에서 달러 예금이 빠르게 늘 경우 은행 입장에서는 외화 자금 운용과 자본비율 관리 부담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
관련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달러예금 잔액은 지난 6일 기준 674억7200만 달러로, 지난해 12월 24일(634억1400만 달러) 대비 6.4%(40억5900만 달러) 증가했다. 단 8거래일 만에 빠르게 늘어난 셈이다.
외화 예수금이 급증하면 은행은 이를 외화 대출이나 해외 채권 등 외화 자산으로 운용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환율이 오르면 외화자산의 원화 환산액이 늘어나 위험가중자산(RWA)이 확대되고, 자본비율 산정의 분모가 커지면서 보통주자본비율(CET1) 등 건전성 지표는 하락 압력을 받는다.
특히 외화 자산은 환율 변동 위험과 신용·시장 리스크가 함께 반영되므로 동일한 규모의 원화 자산보다 RWA 증가 폭이 큰 편이다. 이에 따라 주주환원의 기준이 되는 CET1(금융당국 권고 수준 12%)을 관리해야 하는 은행의 자본 운용 어려움도 커질 수 있다.
또한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은행의 달러 자산 운용 수익성에 대한 눈높이도 낮아지는 분위기다. 미국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달 FOMC 회의에서 공개한 점도표를 통해 올해 금리를 0.25%p 1회 인하할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여기에 지난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경제 참모 출신인 스티븐 마이런 연준 이사는 언론 인터뷰에 "올해 1%p가 넘는 기준금리 인하가 필요하다"며 공격적 금리 인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달러 예수금이 늘면 자본비율 관리 부담이 커지는 측면이 있다"며 "고환율 국면과 생산적 금융 확대 기조를 감안하면 외화예금을 공격적으로 늘릴 유인이 크지 않다"고 말했다.
romeok@newspim.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