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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음력 시월은 '조상의례' 계절..."동성친족집단 결속·정체성 확인"

기사등록 : 2025-11-2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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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문중마다 5대조 이상 조상 묘 찾아 시향사 올려
"호적법 폐지 등 양성사회로 전환되도 문중전체 참여 '조상모시기' 의례 강화 경향"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경북 지역의 음력 10월은 조상의례(祖上儀禮) 계절이다.

이때쯤이면 각 문중에서는 가을걷이를 끝내고 날을 받아 조상의례의 대표격인 시향제(時享祭)를 지내기로 분주한 날을 보낸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음력 10월 초 이튿날'인 21일 영양남씨 대종회와 울진지역 영양남씨 송정공파 등 중랑장공 문중원들이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 소재 중랑공 영번의 묘소에서 시향사를 올리고 있다.2025.11.21 nulcheon@newspim.com

유교 문화의 의례 관련 지침서 격인 예서(禮書)가 묘제(墓祭)로 규정한 시향제는 경북권에서는 '시사(時祀)' 또는 '시향제(時享祭)', 시제(時祭)'라고 부른다.

주자의 '가례(家禮)'는 '4대(代) 조상까지는 3월 상순'에, '그 윗대의 조상은 10월1일'에 올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울진 지역의 각 문중들은 가을걷이가 마무리되면 '시제' 날을 잡기 위해 모임을 갖는 등 분주해진다.

대개 음력 10월 중 '시제'일이 정해지면 문중의 최고 어른은 자손들에게 시제 일정을 알린다. 이때쯤이면 객지에 나가 있는 자손들도 바쁜 일상을 하루쯤 뒤로 미루고 고향을 찾아 시제에 참석한다.

시향제를 올리는 날이 정해지면 문중의 어른들은 재사에 모여 초헌관, 아헌관, 종헌관, 축관, 알자 등을 선정하고 시사 절차를 공유한다. 이를 '파임(派任)'이라고 부른다.

울진 지역의 영양 남씨 문중들은 해마다 음력 10월 초하루날에 '파임'을 열고 이튿날인 2일 아침에 울진 입향조인 '중랑장공 영번'의 시향사를 지낸다. 이처럼 시향사를 올리는 날을 붙박이로 정해놓은 것을 '방일'이라고 한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음력 10월 초 이튿날인 21일 영양남씨 대종회와 울진지역 영양남씨 송정공파 등 중랑장공 문중원들이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 소재 영양남씨 중시조인 '중대광 도첨의찬성사(重大匡都僉議贊成事)'를 지내고 영양군(英陽君)으로 봉해진 남홍보(南洪輔)의 비(碑)를 모신 단소에서 시향사를 지내기 위해 진설하고 있다.2025.11.21 nulcheon@newspim.com

영양 남씨 중랑장공 문중은 매년 음력 10월 2일, 중랑장공 시사 거행에 앞서 영양 남씨 중시조인 '중대광 도첨의찬성사(重大匡都僉議贊成事)'를 지내고 영양군(英陽君)으로 봉해진 남홍보(南洪輔)의 비(碑)를 모신 단소에서 시향사를 올린다.

시제는 본래 묘제(墓祭)를 뜻하는 것으로 시사(時祀)라 부르기도 하며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지내는 전통 제례로 문중원(門中員)의 결속과 향촌 사회 내의 다른 문중과의 위세를 재확인하는 동족 집단 의례 성격을 지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문중(門中)'을 '공동의 조상을 지닌 자손들로 조상의 제사를 목적으로 조직된 부계 혈연 집단'으로 정의하고 있다.

한국의 전통 사회는 '효(孝)'와 '충(忠)'을 기본 가치로 국가나 사람살이의 질서를 가다듬고 또 이를 뿌리 깊게 정착시켜왔다.

이 중 조상 제례는 효와 충을 실천하는 실천 질서이자 자신의 존재와 자신을 둘러싼 씨족 집단들 간의 관계를 재확인하는 존재 확인 공간이기도 하다.

호적법의 개정으로 과거 전통 사회의 '부(父) 중심'의 엄격한 질서와 구분들이 모계를 동반하는 양성 존중의 질서로 재편되어 새로운 보편적 질서로 나아가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었지만, 여전히 울진 지역을 포함 경북권의 음력 10월이면 시제는 엄격한 통과 의례로 치러지고 있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음력 10월 초 이튿날'인 21일 영양남씨 대종회와 울진지역 영양남씨 송정공파 등 중랑장공 문중원들이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 소재 영양남씨 중시조인 '중대광 도첨의찬성사(重大匡都僉議贊成事)'를 지내고 영양군(英陽君)으로 봉해진 남홍보(南洪輔)의 비(碑)를 모신 단소에서 시향사를 올리고 있다.2025.11.21 nulcheon@newspim.com

전통 사회를 떠받쳐 온 조상 제례는 시간과 공간을 기점으로 다양한 명칭으로 치러져 왔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기제사이다. 기제사는 대개 집안의 종손을 중심으로 4대까지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례의식이다.

또 설날이나 추석에 지내는 차례 또한 기제사의 봉사(奉祀) 범위 내에서 치러진다.

이와는 달리 시사는 기제사의 봉사 범위인 4대조까지를 제외한,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례이다.

시사 철이 다가오면 문중 내의 각 파(派)는 한 달 내내 시사 준비로 분주해진다.

특히 그해의 유사(有事, 집사)를 맡은 집에서는 온 가족이 시사 제례를 모실 음식 장만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보낸다.

전통 사회에서 시사는 각 가정의 의례가 아닌 집안이라는 씨족 집단의 의례인 까닭에 많은 비용이 수반된다.

때문에 각 문중에서는 시사를 수행할 비용 마련을 위해 '시제답(時祭沓)'이나 '위토(位土)'를 장만하여 이에 대비해왔다.

곧 시제답이나 위토는 오로지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지낼 시사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토지 성격을 지닌다. 이 같은 시제답이나 위토는 대부분 각 문중의 종손이 소유해 관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1980년대 이후 농촌 사회 인구의 대량 도시 이탈로 휴경 농지가 증가하면서 시제답이나 위토가 묵자 최근에는 집안들끼리 비용을 갹출해 시사제를 행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시제는 5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지내는 제례의식이라는 단순성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자신이 속해 있는 집안 내에서 자신의 신분을 주장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특히 시제는 자신의 문중과 다른 집안의 문중 간의 위세를 가늠해 보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최근 개인주의가 팽배해지는 반면에 오히려 문중 전체가 참여하는 시사 의례가 강화되어 나타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기제사와 명절 제사인 차례가 집안 내의 사회적 결속을 강조하는 의례라면 시제는 동족 집단의 신분 결속과 위세를 확보하는 제례이자 문중 밖의 향촌 사회 내의 다른 씨족 집단에 대한 위세를 과시하는, 이른바 문중 차원의 대외 홍보용 집단 의례인 셈이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음력 10월 초 이튿날'인 21일 영양남씨 대종회와 울진지역 영양남씨 송정공파 등 중랑장공 문중원들이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 소재 영양남씨 울진 입향조인 고려 유신 '중랑장 영번'공의 묘소에서 시향사를 올리기 전에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2025.11.21 nulcheon@newspim.com

시사의 절차는 명절 제사인 차례와는 달리 삼헌(三獻)을 하며 분향, 강신, 참신, 초헌, 아헌, 종헌, 삽시, 합문, 계문, 헌다, 철시, 사신, 철찬, 음복의 순으로 진행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울진 지방에서는 시제를 지내기 전에 먼저 산신제(山神祭)를 지낸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음력 10월 초 이튿날'인 21일 영양남씨 대종회와 울진지역 영양남씨 송정공파 등 중랑장공 문중원들이 시향사를 거행하기 위해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 소재 영양남씨 울진 입향조인 고려 유신 '중랑장 영번'공의 묘소로 오르고 있다.2025.11.21 nulcheon@newspim.com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음력 10월 초 이튿날'인 21일 영양남씨 대종회와 울진지역 영양남씨 송정공파 등 중랑장공 문중원들이 울진군 죽변면 화성리 소재 영양남씨 울진 입향조인 고려 유신 '중랑장 영번'공의 묘소에서 시향사를 거행하고 있다. 2025.11.21 nulcheon@newspim.com

시사의 모든 절차가 끝나면 참제자(參祭者)들은 재사(齋舍)가 있을 경우에는 재사에서 음복을 하며 재사가 없을 경우 묘소 앞에서 음복을 한다.

음복이 끝나면 제물을 참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이를 울진 지방에서는 '방패한다'고 하고 이때 나눈 음식을 '봉시'라 부른다.

[울진=뉴스핌] 남효선 기자 = 음복이 끝나면 제물을 참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는데 이를 울진지방에서는 '방패한다'고 한다.2025.11.21 nulcheon@newspim.com

먹을거리가 턱없이 부족했던 시절, 시제를 지낸 뒤 고르게 나눈 '봉시'는 당시 아이들에게 유일하고 특별한 먹거리이기도 했다. 때문에 시제철이 되면 문중의 어른들 뒤를 좇아 집안의 아이들이 열을 지어 뒤따르는 모습은 당시의 정황을 가늠케 하는 모습들이었다.

 

nulcheon@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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