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승현 기자 = HD현대가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를 합병키로 결정하며 글로벌 조선업계에 새롭게 불기 시작한 '트럼프 호황' 사이클 선점에 나섰다.
특히 경쟁국인 중국과 일본이 자국 기업 내 합병을 통해 초대형 조선사를 만드는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마스가(MASGA) 프로젝트' 등에서 중추 역할을 하겠다는 정기선 수석부회장의 결단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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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중공업(위)·HD현대미포(아래) 야드 전경 [사진=HD현대] |
HD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중공업, HD현대미포는 27일 각각 이사회를 개최하고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 양사 간 합병에 대한 안건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향후 임시 주주총회 및 기업결합 심사 등을 거쳐 올해 12월 통합 HD현대중공업으로 새롭게 출범한다.
HD현대는 합병 이유에 대해 "양적‧질적 대형화를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함으로써 시장을 확대, 다변화하는 동시에 최첨단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해 치열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라고 설명했다.
실제 글로벌 시장에서는 조선사의 대형화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국영 조선사인 '중국선박그룹'(CSSC, China State Shipbuilding Corporation)의 자회사인 '중국선박공업주식유한회사'와 '중국선박중공주식유한회사'의 합병안이 지난 7월 상하이증권거래소 인수합병심의위 심사를 통과했다.
중국선박공업은 상선 부분, 중국선박중공은 방산 부분이 중심으로 합병 후에는 연간 수주량 250척 이상, 순수화물적재톤수(DWT) 2860만톤에 육박하는 단일법인 기준 세계 최대 조선사가 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1위 조선사인 '이마바리조선'은 지난 6월 2위 조선사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의 주식 일부를 추가로 취득한다고 발표했다. 이마바리조선은 JMU 출자 비율을 기존 30%에서 60%로 높여 자회사로 만들 예정이다. 사실상의 합병 작업이 끝나면 건조량 기준으로 세계 4위 규모 조선사 그룹이 만들어진다.
여기에 일본 정부는 '국립조선소'를 만드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국가가 시설을 건설하고 운영은 민간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이를 위한 1조엔 규모의 민관기금 창설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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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존 펠란 미 해군성 장관과 함께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야드를 둘러보며 건조 중인 함정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HD현대] |
이 같은 상황에서 HD현대중공업, HD현대미포, HD현대삼호로 나뉜 HD현대의 조선업 역량을 점차 하나로 모아 초대형화 된 경쟁자들에 맞서겠다는 복안이다.
HD현대는 "통합 HD현대중공업의 출범은 글로벌 1위 중·대형 조선사 간 합병이라는 점에서 종합 역량의 확장, 시장의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차별점"이라고 강조했다.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합병은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불을 지핀 '마스가 프로젝트' 대응에 최적화 된 기반을 갖추는 장점도 있다.
미국은 조선업 자체가 쇠퇴하며 상선과 함정 분야 모두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미국 함정의 노후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기술력 저하, 숙련공 부족 등 기반조차 무너져 있어 미국의 절박함이 크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한미 관세협상 타결 후인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 내 MRO 인프라 문제와 인력 부족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보도했다.
WSJ은 공공 조선소의 노후화, 숙련 인력 감소, 기술력 저하 등이 미국 해군 함정 정비가 지연되고 품질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비 지연의 원인으로 숙련된 용접공 및 기술 인력 부족, 공사 계약상의 임금 구조, 수주 전략 후 인력 유출, 장비 노후화 등을 꼽으며 이러한 요소들이 정비 기간을 늘리고 비용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HD현대는 "HD현대중공업은 국내 최다 함정 건조 및 수출 실적을 보유한 조선사로서, 이 분야 우수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축적했다"며 "여기에 HD현대미포가 갖춘 함정 건조에 적합한 사이즈의 도크와 설비 및 우수한 인적 역량을 결합, 급증하는 글로벌 방산 시장에서 기회를 신속하게 포착한다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미 정상회담 이후 마스가 프로젝트의 본격 가동을 앞둔 상황과 전 세계 각국의 해군력 강화 움직임이 지속됨에 따라 K-방산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내다봤다.
영국의 군사 전문지 '제인스'(Janes)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예상되는 글로벌 함정 신규 계약 시장 규모는 총 2100여 척으로, 금액이 약 3600억 달러(한화 약 503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통합 HD현대중공업은 방산 분야에서 오는 2035년까지 연 매출 10조원 달성을 목표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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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가 '한미 조선산업 공동 투자 프로그램 조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왼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복규 한국산업은행 수석부행장, 프랭크 브루노 서버러스 캐피탈 최고경영자,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 [사진=HD현대] |
HD현대중공업 합병과 함께 HD현대의 조선 부문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통합 HD현대중공업과 조선 부문 해외사업을 담당하는 투자법인도 설립한다.
싱가포르에 설립되는 이 법인은 올해 12월 설립 예정으로, HD현대베트남조선과 HD현대중공업필리핀, HD현대비나(가칭) 등 해외 생산거점을 관리하면서 신규 야드 발굴과 사업 협력 등 해외사업을 총괄하는 허브 역할을 맡게 된다.
인도, 베트남 등 조선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신흥 시장에 독립된 투자법인을 세움으로써 미국 시장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시장 다양화에 나서겠다는 전략으로 관측된다.
kims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