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등록 : 2025-08-11 15:20
[세종=뉴스핌] 김기랑 기자 = 올해 한국 경제가 '1%대' 성장률을 회복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이달 중 '새 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며 수정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내놓을 예정인데, 미국 관세 인하와 추가경정예산(추경) 집행 효과가 반영되면 0%대 성장은 피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하지만 미국이 돌연 반도체에 100%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낙관론에 제동이 걸렸다. 반도체가 한국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관세 충격이 현실화되면 수출 감소와 경기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관세 변수의 향방에 따라 올해 성장률 전망이 당초 예상치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 추경 효과 본격화…해외 IB들, 韓 성장률 일제 상향 조정
11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중 '새 정부 경제성장전략'을 발표하며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 제시할 예정이다. 정부는 통상 연 2회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한다. 연초에 한 해의 성장률과 거시경제 목표를 제시한 뒤, 연중에 상반기 실적과 대외여건 변화를 반영한 수정 전망치를 내놓는 식이다.
이번 성장률 전망치는 정권 교체 이후 새 정부가 처음으로 내놓는 수정 전망치라는 점에서 보다 큰 의미를 갖는다. 단순한 수치 조정이 아니라, 사실상 새 정부의 향후 경제 운용 기조와 정책 우선순위 등을 가늠할 수 있는 첫 공식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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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정부는 지난 1월 발표한 '202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8%로 제시한 바 있다.
이번 발표에서는 이를 다소 하향 조정하되, 1%대 이하로까지 끌어내리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하반기부터 추경 집행 등 경기 부양책의 효과가 본격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반도체·자동차 수출 개선과 민간 소비 회복세 등이 맞물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25%의 고율 관세 부과를 하루 앞두고, 미국과 관세 협상을 타결하기도 했다. 이를 통해 그동안 수출 둔화 우려와 기업 경영 불확실성을 키웠던 상호 관세 부담을 크게 줄였다.
이런 사실을 기반 삼아 해외 주요 투자은행(IB)들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일제히 1%대로 상향 조정했다. 국제금융센터에 의하면 지난달 말 기준 해외 주요 IB 8곳의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0%로 집계됐다. IB 전망치 평균은 지난 6월에 기존 0.8%에서 0.9%로 오른 데 이어, 지난달 말까지 두 달 연속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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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씨티는 지난달 2분기 국내총생산(GDP)을 고려해 올해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6%에서 0.9%로 0.3%포인트(p) 올려잡았다. 골드만삭스는 한미 관세 협상 결과를 고려해 기존 1.1%에서 1.2%로 소폭 상향 조정했다. 특히 해외 주요 IB 8곳 가운데 한국 경제를 가장 비관적으로 점쳤던 JP모건은 기존 0.5%에서 0.7%로 한 달 만에 0.2%p 높였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오는 12일 발표할 수정 경제전망치를 5월 전망치인 0.9%보다 소폭 상향 조정할 것으로 관측된다. KDI가 성장률 전망치를 높여 잡을 경우, 정부·민간·해외기관 전반에서 하방 위험이 완화되는 흐름이 확인돼 '경기 바닥론'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 트럼프 '반도체 관세 100%' 돌발 변수로…시장 우려 고조
하지만 이런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는 변수가 등장했다. 미국 정부가 돌연 반도체에 100%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성장률 상향 흐름이 급격히 위축되기 시작한 것이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반도체에 약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반도체는 한국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품목으로, 무역수지 흑자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1.4% 증가한 733억달러(약 102조원)로 역대 상반기 기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이어 지난달 반도체 수출도 전년 대비 31.6% 크게 증가하면서 역대 7월 중 최고치를 다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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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반도체 수출이 호조를 보였다는 사실은 관세 충격 시의 파급력이 상당할 수 있음을 방증한다. 관세 충격이 현실화될 경우 수출 물량 감소와 단가 하락이 동시에 나타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압력까지 겹쳐 국내 제조업 전반에 파급될 수 있다. 특히 메모리 반도체 가격 회복세와 투자 확대 계획이 꺾일 경우, 연관 산업과 지역 경제에도 연쇄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조치가 올해 성장률을 당초 예상치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뜨릴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수출 감소뿐만 아니라 기업들의 투자·고용 계획이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내수 회복세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정부가 기대하는 하반기 성장 모멘텀 자체가 약화돼, 이번 성장률 전망 상향 기류가 일시적인 반짝 흐름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현재 정부는 반도체 관세 관련 정보를 파악 중인 상태로, 미국의 세부 방침 등이 공개되지 않은 만큼 아직 우리 경제에 미칠 파급력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정부는 지난 관세 협상에서 미국 정부로부터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았음을 근거로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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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표 다음날인 7일 "우리나라는 최혜국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며 "100%든 200%든 간에 어떤 나라가 최혜국 대우를 받는다면, 우리 반도체나 의약품 분야에 있어 최혜국 대우를 약속받은 것이란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지 않을까 싶다"고 언급했다.
전문가들은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될 경우 정부의 성장률 목표 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고율 관세가 시행되면 추경 집행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성장률이 1%를 넘기기는 어려우며, 오히려 0%대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망치는 시장 기대를 부풀리기보다 현 상황을 냉정히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반도체 관세 충격이 더해질 경우 성장률이 0%대로 내려가는 것은 이미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추경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1% 이상 반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낙관적인 수치를 제시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시장 신뢰를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rang@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