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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모의 외교포커스] 李정부 아세안 외교 첫 발....실용외교 출발점 될까

기사등록 : 2025-07-09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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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쿠알라룸푸르에서 개막
아세안의 '전략적 자율성'은 '실용외교'에 최적 토양
미·중 경쟁시대 '호혜적 전략 파트너' 가능성 충분

[서울=뉴스핌]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9~11일 열리는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한국은 사상 처음으로 외교부 장관이 아닌 차관이 대표로 참석한다. 조현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임명 절차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조 후보자를 대신해 한-아세안, 아세안+3(한·중·일),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외교장관회의, 한-메콩 외교장관회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5개의 회의체에 참석할 예정이다.

아세안은 1967년 8월 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네시아 등 5개국 연합으로 출범했다. 이후 베트남·라오스·캄보디아·미얀마·브루나이가 합류해 10개국으로 늘어났다. 동티모르도 곧 합류할 예정이어서 아세안은 올해 11개국으로 늘어나게 된다. 한국은 1991년 아세안과 완전 대화상대국 관계를 수립했고 1997년부터 한-아세안 정상회의를 매년 갖고 있다.

2025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 로고

아세안은 역내 국가와의 협력뿐 아니라 한국과 미국, 러시아, 중국, 한국, 일본, 호주, 인도, 유럽연합(EU) 등 세계 질서에 영향력을 가진 역외 강대국을 대화상대국으로 참여시켜 동아시아 지역협력이 아세안을 중심으로 정착되도록 발전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른바 '아세안 중심성(ASEAN centrality)'이라는 개념을 세계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현재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는 27개국 외교장관이 참석해 '아세안의 관점'에서 국제정세는 논의하는 협의체로 자리잡았다.

세계 강대국이 모두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하는 이유는 아세안의 가치 때문이다. 아세안은 국가총생산(GDP) 기준으로 세계 5위 경제권이다. 세계 3위에 해당하는 6억7천만명의 인구를 보유한 거대 노동력 시장이면서 핵심 광물을 포함한 천연자연이 풍부해 모든 나라가 경제안보의 중점 협력 대상으로 꼽고 있다.

미·중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아세안의 전략적 가치는 급상승했다. 아세안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중국의 일대일로가 교차하는 '플래시 포인트'다. 중국이 아세안에 영향력을 확대하자 미국이 이를 적극적으로 견제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모든 나라가 저마다의 인·태 전략을 갖고 아세안에 관여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아세안에 대한 한국의 인식과 관심은 크지 않았다. 한국이 본격적인 아세안 전략이라고 부를만한 정책적 관여를 시작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 정책'이 나온 뒤다. 문재인 정부는 주변 4강 외교에 갇혀 있는 한국의 외교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신남방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를 '균형 외교'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나 사람(people)·평화(peace)·번영(prosperity)의 3P를 내세운 신남방 정책은 개념상 균형 외교라기보다 '외교 다변화'에 가까웠다. 아세안의 관심을 끌고 상호 교류를 대폭 확대하는데 성공했지만 한국의 관심은 아세안의 경제력과 문화에 집중됐을뿐 미·중 전략경쟁 속에서 생존을 도모하는 아세안의 절실하고 핵심적인 과제에 대한 전략적 접근은 없었다.

지난해 7월 25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개막된 2024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서 아세안 회원국 장관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라오스 아세안외교장관회의 홈페이지] 2024.07.25.

윤석열 정부는 당초 아세안에 큰 관심이 없었다. 대선 캠페인과 정권인수위원회 운영 과정에서도 아세안 전략은 언급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취임 열흘만에 한·미 정상회담을 가진 것을 계기로 한국판 인·태 전략 수립에 착수했다. 사실상 미국의 요구에 따른 후속 조치였기 때문에 한국의 인·태 전략은 미국의 인·태 전략과 접점을 넓히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통해 '한-아세안 연대구상(KASI)'이라는 전략을 세웠다. KASI의 핵심 개념은 자유·규범·가치였다. 이는 다양하고 편차가 큰 '약소국 연합' 아세안이 지향하는 합의·견제·상호 존중 등의 원칙과 충돌하는 요소를 갖고 있었다. 무엇보다 윤 정부의 KASI는 미국의 인·태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아세안 회원국 역시 한국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확실한 미국 편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윤 정부의 KASI는 아세안의 공감을 얻는데 실패했다.

아세안을 빼놓고 국제정세를 논하기 어려운 시대가 된지 이미 오래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 역시 정교하고 세심한 아세안 전략이 절실하다. 이재명 정부가 어떤 아세안 전략을 갖고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대선 과정에서 '글로벌 사우스'와의 협력을 언급하고 '신아시아 전략'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만이 기억날 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아세안이 이재명 정부가 내세우는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의 성과를 거두기에 최적의 토양이라는 점과, 한국이 보다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해줄 것을 아세안이 절실히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세안은 한국에게 3번째로 규모가 큰 교역 상대다. 아세안은 에너지·인프라·원자력·디지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이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지난해 7월 27일 라오스 비엔티안의 국립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회의 장면 [사진=공동취재단] 2024.07.31

주목할 점은 미·중 전략경쟁으로 '아세안 중심성'이 흔들리고 있는 상황임에도 아세안은 여전히 한 쪽으로 기울지 않으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5월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제46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은 향후 20년 동안의 대외전략 기본 방향을 제시한 '아세안 공동체 비전 2045'를 채택했다. 특히 정치·안보 분야에서 평화와 안정, 국제법 준수, 아세안의 지역적 역할 강화를 목표로 제시하면서 미·중 사이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전략적 자율성'을 강조했다.

아세안의 이같은 고민과 전략은 이재명 정부의 실용외교와 맥이 닿아 있다. 아세안과 한국이 미·중 전략경쟁 시대에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안정적이고 호혜적인 파트너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아세안 관련 외교장관회의에 외교부 장관이 참석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유감이지만, 이번 회의를 계기로 한국과 아세안이 단순한 경제적 이익 추구뿐 아니라 전략적 협력이 가능한 진정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서로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이재명 정부는 이전 정부가 채우지 못했던 요소를 보완한 정교한 아세안 전략을 조속히 마련하고 아세안을 실용외교의 성공적 출발점으로 삼기를 바란다.

opento@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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