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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조달이 관건" 상급지 재건축, 시공사 선정에 금융조건 1순위 떠올라

기사등록 : 2025-07-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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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개포우성7차 재건축서 자금조달 조건 경쟁 '격화'
지난달 대출규제로 이주비도 묶이면서
조합원 사이 건설사 현금 창출력 중요 조건으로 떠올라

[서울=뉴스핌] 정영희 기자 = 정부의 강력한 대출 규제책 발표 이후 서울 주요 정비사업 조합에선 시공사 선정의 주요 조건으로 자금조달 능력이 떠오르고 있다. 기본이주비 한도까지 줄어들면서 모자란 사업비를 건설사로부터 끌어와야 하기에 이들의 현금 보유고가 중요해진 셈이다. 업계에선 이 같은 현상이 지속되면 건설사 재무 건전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 지금도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는 대형사와 중견·중소기업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상반기 서울 주요 정비사업지 시공사 금융조건. [그래픽=홍종현 미술기자]

◆ 강남부터 용산까지… 서울 상급지 조합선 자금조달 조건에 '돋보기'

9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개포우성7차 재건축 시공권을 두고 경쟁 중인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물산)과 대우건설이 금융 조건을 내세워 조합원 마음 사로잡기에 나섰다.

삼성물산은 사업비 전체를 대상으로 한도 없는 최저금리를 책임지고 조달하겠다고 약속했다. 종전 자산평가액이 분양가보다 높은 조합원에게는 분양계약 완료 후 30일 내 환급금 100%를 지급한다. 분담금을 내야 하는 조합원에는 최대 4년까지 납부 유예를 허용한다. 이주비 50%에 추가 이주비 100%를 더해 LTV(담보인정비율) 150%를 제공한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이 필요 없는 압도적 재무역량과 업계 최고 신용등급(AA+)을 보유하고 있어 가능한 제안"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은 사업비 조달금리로 역대 정비사업 중 최저 수준인 CD(양도성예금증서)+0.00%를 제안한 동시에 전액 책임 조달을 약속했다. 조합원 분담금 납부 유예 기간으로는 6년을 제안했다. HUG 보증을 활용한 필수 사업비를 마련할 때 발생하는 보증수수료도 조합 대신 내기로 했다. 이주비 LTV는 100%까지 가능하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역대급 사업 조건은 이익보다 조합원의 마음을 얻는데 혼신을 다하겠다는 의지 표시"라고 말했다.

조합원 사이에서도 두 회사의 자금조달 조건을 둔 비교·분석이 한창이다. 한 조합원은 "사업비 규모도 크고 집 한 채가 재산 전부인 이들이 많다 보니 금리나 분담금 등 돈 문제를 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지난달 HDC현대산업개발의 승리로 끝난 용산구 용산정비창 1구역 재개발 수주전에서도 다수의 금융 혜택이 공약처럼 등장했다. HDC현산은 최저 이주비로 조합원당 20억원을 내세웠다. 국내 정비사업 역사상 가장 높은 금액이다. 추가 이주비 대출 LTV는 150%로 설정했다. 

이에 포스코이앤씨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 없이 1조5000억원 규모의 사업 촉진비를 자체 조달하는 동시에, 필요 시 추가 사업비를 최대 1000억원까지 지급하겠다고 했다. 추가 이주비 LTV는 160%, 입주 시 분담금 100% 납부 등을 통해 조합원 부담 최소화를 목표로 했다.

◆ 업계 "규제 필요성 알지만… 정비사업엔 악영향"

통상 정비사업 시공사를 선정할 때 경쟁입찰이 성사되는 경우 각 건설사는 조합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각종 혜택을 내세운다. 조합원 선호도에 따라 분양 방식을 바꾸거나 공사비를 낮추기도 하고, 때로는 고급 자재를 무상으로 지급하거나 설계 변경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확언한다. 상급지를 중심으로 하이엔드 브랜드 도입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브랜드 자체를 하나의 조건으로 선보이는 회사도 빈번하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정부가 수도권·규제지역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같은 달 28일부터 수도권 내 주담대 한도를 6억원 이하로 제한하고, 갭투자(전세 끼고 매매) 목적의 주택 구입과 다주택자의 추가 주택구입 대출을 전면 금지한 것. 시행일 관리처분인가를 받는 정비사업장의 이주비대출과 잔금대출에도 자물쇠를 걸면서 서울 내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목전에 둔 정비사업지 조합원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올 3월 기준 사업시행계획인가를 받은 후 관리처분계획인가를 기다리는 사업지는 총 52곳(4만8633가구)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금융당국은 시공사가 조합에 빌려주는 추가사업비를 바탕으로 빌려주는 추가이주비에는 6억원 한도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유권해석을 내놨지만, 조합 입장에서는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추가이주비는 조합원 소유 주택담보대출에서 나오는 기본이주비만으로 집을 구하기 어려울 때 건설사로부터 빌리는 돈인데, 금리가 5.5~6.5%로 기본이주비의 약 2배 높기 때문이다.

대출규제 시행 전에는 LTV 50%까지 이주비대출이 나왔다. 예컨대 재건축을 앞둔 규제지역에 매매가 15억원 상당의 주택을 가진 A씨가 대출규제 전 빌릴 수 있는 기본이주비는 7억5000만원이었다. 금리가 3.5%라고 가정하면 1년에 내야 하는 이자는 약 2700만원이다. 규제가 적용되면 기본이주비(최대 6억원)을 뺀 1억5000만원은 추가이주비로 받아야 한다. 추가이주비 대여 금리가 6%라면 여기서 나오는 이자만 연간 1000만원 정도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연구소 소장은 "정비사업은 일반적으로 금융권에서 받은 대출로 사업비를 충당한 후, 돈이 모자라면 조합원끼리 분담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며 "아무리 공사비를 아껴도 시공사의 신용등급이 낮으면 자금조달 측면에서 금융비용을 올라가기에 이 부분을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건설사의 신용등급도 중요해졌다.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를 선택해야 금융비용을 최대한 줄일 수 있어서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10대 건설사 신용등급(무보증사채)은 삼성물산이 AA+(안정적)로 가장 높다. 이어 ▲현대건설·DL이앤씨 AA-(안정적) ▲현대엔지니어링 AA-(부정적) ▲포스코이앤씨 A+(안정적) ▲대우건설·GS건설·롯데건설·HDC현대산업개발 A(안정적) ▲SK에코플랜트 A-(안정적) 순이다.

전문가 사이에선 신용등급이 높은 회사를 우대하는 흐름이 장기화되는 경우 중견 건설사의 설 자리가 더욱 줄어들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수도권 주요 사업지는 10대 건설사가 독식하고, 중견이나 중소기업은 소규모 정비사업만 겨우 수주하는 상황이 반복될 것이란 주장이다. 김화랑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중견 건설사는 높은 수준의 원가 고착화와 PF 우발채무 등으로 신사업 등의 노력보다는 기존 사업 영역을 기반으로 직면한 경영상의 어려움 극복에 나서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대형 건설사 또한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사업비 대출이 늘면 그만큼 갖고 있던 현금을 많이 내놔야 한다. 올 1분기 기준 시평 30위 내 상장 건설사 20개의 현금 및 현금성자산 총액은 23조1312억원으로 전년 동기(25조3168억원) 대비 8.6%(2조1856억원) 줄었다.

전지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2022년 이후부터 유동성 대응력이 떨어지고 지방 분양실적이 부진한 회사가 증가하는 추세"라며 "비우호적인 자금조달 여건이 지속된다면 각 사 PF유동화증권과 회사채 등의 차환이나 상환 부담이 확대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chulsoofriend@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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