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등록 : 2023-07-12 15:57
[서울=뉴스핌] 이성화 기자 = 수도권 일대에서 이른바 '무자본 갭투자'로 두 딸의 명의를 빌려 수백채의 빌라를 사들인 뒤 임대차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임대업자가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준구 판사는 12일 사기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부동산실명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모(58) 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어 "일명 전세사기 범행은 서민층과 사회초년생 등 피해자들의 삶의 밑천을 대상으로 이들의 삶의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것으로 죄질이 매우 좋지 않다"며 "피고인의 사기 범행으로 85명이라는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했고 피해 합계액도 183억원이 넘을 정도로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이 판사는 "임대차보증금이 재산의 전부 내지 대부분인 피해자들은 이를 돌려받지 못해 주거 안정에 심각한 위협을 받았고 아직까지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며 "그럼에도 피고인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김씨 측은 임차인들을 기망한 사실이 없고 변제능력도 있었다며 혐의를 부인했으나 이 판사는 당시 김씨에게 자금이 있었는지, 보증금 반환이 가능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며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김씨는 선고 직후 호흡곤란 증세를 보이며 뒤로 쓰러졌다. 그는 약 15분간 응급처치를 받고 휠체어를 타고 법정을 빠져나갔다.
피해 임차인들을 대리한 공형진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취재진과 만나 "검찰 구형이 10년인 걸 고려하면 이러한 전문적인 갭투자 전세사기에 대해 앞으로 법원이 엄벌을 하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고 말했다.
공 변호사는 "피해자들의 입장에서는 전세 보증금에 대한 재산적 회복이 제일 중요한데 변제를 받은 분은 극소수"라며 "정치권과 입법자들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 판사는 김씨가 분양대행업자 등과 공범으로 기소돼 배상 책임의 범위가 명백하지 않다며 피해자들의 배상신청을 각하했다.
앞서 김씨는 분양대행업체와 공모해 2017년 4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서울 강서구와 관악구 등 수도권 일대에서 무자본으로 신축 빌라 400여채를 사들인 뒤 임차인들에게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로 지난해 5월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85명의 임차인들로부터 총 298억원 상당의 전세 보증금을 받아 이 가운데 183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김씨는 임대차보증금 액수가 실질 매매대금보다 낮은 '깡통 전세'라는 사실을 숨기고 30대인 두 딸의 명의로 빌라 소유권을 취득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추가 수사 결과 피해 임차인은 355명, 피해액은 795억원으로 늘었고 2019년 기준 두 딸의 명의로 등록된 주택 수만 524채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씨는 두 딸, 분양대행업자 등과 함께 지난해 7월 사기 등 혐의로 추가 기소돼 같은 법원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 심리로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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