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등록 : 2018-08-28 18:21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편하게 하자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남들이 유별, 유난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싶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을 정도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죠. 이해하지 못하면서 연기하는 게 더 스트레스거든요(웃음)."
욕심이 많다고 해야 할까, 완벽주의자라고 칭해야 할까. 배우로서 작품이나 캐릭터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지난 24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김재범(40)은 성실함 그 자체, 데뷔 15년 차에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일까. 뮤지컬 '인터뷰'에서 쉽게 소화하기 힘든 '싱클레어 고든' 역을 훌륭히 소화하고 있다.
"처음 대본을 받아봤을 때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라고 생각했죠. 벌써 한 달여밖에 안 남았는데 시원섭섭한 마음이에요. 또 언제 무대에 올라올지 모르니까…. 할 때는 힘들지만 막상 끝나면 아쉽고 그리워요. ‘이렇게 해볼걸’이란 생각도 많이 들고요."
뮤지컬 '인터뷰'(연출 추정화)는 살아남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소년이 10년 후 또 다른 남자와 인터뷰를 하며 거짓과 진실, 고통의 실타래를 풀어가는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다. 지난달 10일 첫 공연 당일 배우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잘 추스르고 다시 한번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에요. 정말 일어나기 힘든 일이죠. 다른 공연에 비해 '인터뷰'는 위험한 장면이 없는 편이거든요. 많은 분이 놀랐을 거예요. 그래도 (최)영준 형이 걱정하지 말고 공연 잘하라고 전화도 왔고 많이 괜찮아졌죠. 그 사건 이후에 올라간 공연에서는 약간 트라우마도 있었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지더라고요."
사실 '싱클레어 고든'은 어린 시절 아동학대, 가정폭력으로 인해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앓고 있다. 그의 본명은 '맷 시니어'로 죽은 소녀 '조안 시니어'의 동생이다. 그 속에는 '노네임', '지미', '앤', '우디' 등 여러 인격체가 살고 있다. 무겁고 민감한 내용이지만, 김재범은 "불쌍한 아이로 안 보였으면 좋겠다"고 당부한다.
"'앤'은 '조안'과 놀고 싶어서 만들어진 인격이고 '우디'는 학대받은 고통이 너무 커 대신 학대 받는 인격이에요. '지미'는 '조안'이 남자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질투해서 새아버지 모습에서 본떠 만들었죠. '노네임'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인격이고요. 아동학대의 영향이 있지만 모두가 이렇게 되는 건 아니에요. 자칫 잘못하면 이 사람이 저지른 잘못은 모두 없어지고 불쌍한 애로 보일 수 있어서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신경 썼어요. 어쨌든 처벌받아야 하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니까요."
무대 위에서 김재범은 시시각각 변화한다. '싱클레어 고든'을 비롯해 매 순간 다른 인격체가 버퍼링 없이 튀어나온다. 단 한 명도 같지 않은, 목소리도 말투도 모두 다른 그의 열연은 관객들을 순식간에 집중하게 만든다. 체력은 물론, 감정 소모도 엄청나다.
"작년에 재연할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감정적으로 힘든 게 있어요. '스모크'를 하고 바로 넘어와서 그런가(웃음). '스모크'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죽고 싶다, 그만할래' 이러는데 여기 와서 학대받고 '살려주세요' 이러니까 감정 소모가 심한 듯하죠. 육체적인 것보다 감정 소모 때문에 지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멘탈 관리를 특별히 하진 않아요(웃음)."
김재범은 뮤지컬 '인터뷰'가 끝나면 곧바로 연극 '아트'에 합류한다. '아트' 또한 쉴 틈 없이 쏟아지는 대사, 말싸움의 극한을 볼 수 있는 작품으로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 조금 쉬고 싶을 법도 하건만, 김재범은 "이번이 아니면 언제 할까 싶은 생각"이라며 욕심을 냈다. 체력 관리는 시체놀이로 충분하단다.
"특별한 취미가 있는 게 아니라 쉬는 날 누워서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해요.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쉬어요. 운동해서 체력을 키우고 싶은데 기간이 걸리잖아요. 그동안 지쳐버리죠(웃음). 그래서 평소에 잘 안 움직여요. 말도 많이 안 하고 계속 충전해요. '아트'는 워낙 결이 다른 작품인데 이번이 아니면 언제 할까 싶어서 놓치고 싶지 않았죠. 물론 계속 싸우긴 하지만 친구들과의 얘기니까 감정 소모는 덜하지 않을까 싶어요."
올 상반기, 김재범은 tvN 드라마 '시를 잊은 그대에게'에서 박시원 역을 맡아 대중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영화 '마차 타고 고래고래', '데자뷰'에도 출연했다. 역할 크기에 상관없이 주어진 책임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아직은 무대가 제일 편하다.
"떨렸어요. 처음 드라마를 해보는 거니까요. 카메라도 많고 움직이면 안 되고 대사가 물리면 안 돼서 힘들었죠. 근데 점점 적응되더라고요. 많이 도와주시고 캐릭터 때문에 무대보다 더 주접떨고 오버해서 그런 듯해요. 기회가 되면 계속하고 싶어요. 근데 아직은 무대가 제일 편해요.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웃음)."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