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등록 : 2018-06-25 18:51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미친 듯이 땀 흘리고 춤추고, 최선을 다해 에너지를 내는 만큼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공연이에요. 요즘 사는게 힘들다고들 많이 하는데, 공연을 보고 각자의 삶을 멋지게 살아보시는 게 어떤가요?"
댄스씨어터 '죽고 싶지 않아'(연출 류장현)에 출연 중인 배우 안승균과 강은나를 지난 21일 국립극단에서 만났다. '죽고 싶지 않아'는 춤을 통해 생명력이 넘쳐야 할 시기에 시들어가고만 있는 우리 사회 청소년들에게 생(生)의 기운을 전하는 작품. 지난 2016년 국립극단 청소년극 릴레이의 작품으로 소개된 후 한층 업그레이드돼 관객과 만나고 있다.
"재작년보다 극적인 요소가 많이 추가됐어요. 배우들과 많이 이야기를 나눴고, 영화나 책, 뉴스 등을 다같이 공유했죠. 저희의 움직임에 더 의미를 담으려 했고, 구체화되고 디테일해졌어요. 무용수와 배우들이 바뀐 느낌도 들고 서로 신중해지고 배려심이 많아진 거 같아요. 연출님도 업그레이드 된 것 같거요.(웃음)"(안승균)
"개인적으로 기다려왔던 장르에요. 대학생 때는 연극을, 지금은 무용 석사 과정을 밟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웠는데 하면서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 걸 느끼는 중이에요. 11명의 출연진들이 처음에는 배우, 무용수 경계를 나눠서 생각했는데 작업을 진행하면서 모두가 배우가 되거나 무용수가 되고 있어요. 어렵기도 하고 난해하거나 모호한 부분도 있지만 느끼는대로 감각적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어요."(강은나)
'댄스씨어터'(Dance Theater)란 말 그대로 춤과 연극이 결합된 장르로, 춤을 통해 출연진들의 신체성과 역동성을 극대화한다. '죽고 싶지 않아'는 원시적인 삶의 충동, 생명의 욕구를 상상력 넘치는 춤의 언어로 풀어낸다.
"죽고 싶지 않은 우리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청소년들의 불안하고 흔들리는 삶을 다루기도 하고 그걸 넘어서 우리 모두의 삶 자체를 보여주고 있죠. 저희 퍼포머들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그 강렬한 에너지로 각자의 삶을 응원하는 작품이에요."(강은나)
"'나는 잘 살고 있나, 어떻게 살고 있나'란 생각을 들게 해요. 단순히 청소년극이지만 성인들에게도, 좋은 어른이 어떤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각자 삶을 살아오면서 이 공연을 봤을 때 그냥 재밌거나, 답이 되거나, 그런 게 공연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댄스시어터라는 독특한 작품이라 본능적으로 움직이다보니 감각적으로 관객과 만났을 때를 상상하게 하고 생각하게 만들어요."(안승균)
과거 안승균은 중고등학생 시절 댄스 동아리 활동을 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연기로 전향했다.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 분명 큰 도움이 됐을 터. 강은나 역시 연기도, 무용도 모두 경험했다. 두 사람은 배우와 무용수의 만남이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성장에 도움이 된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무용수의 입장에서 보면 예전에는 감각적으고 즉흥적으로 몸을 움직이면서 감정들을 표현했다면, 지금은 더 섬세하고 깊이 있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 장면이 뭘 의미하고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더 고민하고 몸으로 표현하는 거죠. 처음에는 어려워하고 어색해했다면, 지금은 공감도 하고 또다른 에너지를 내고 있어요. 무용수들도 배우들이 애쓰는 노력을 보면서 더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고요. 배우들이 너무 춤을 잘 춰서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어요.(웃음)"(강은나)
"서로에게 자극을 많이 주고 도움을 많이 받아요. 배우의 경우 명확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못하고, 이상한 상황을 마주하면 당황하는 타입이라면, 재작년에 이걸 깼어요. 당시 배우인데 무용수에게 영감을 줄 수 있을까 욕심도 가졌어요. 그래서 말을 하면서 움직이는 부분을 연출에게 제안했는데 숨 한 번 잘못 쉬면 어긋나고 침 삼킬 타이밍도 없는 위험한 시도였지만 도전하고 시도했죠. 사실 무용수들이 애써주는 장면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배우도 무용수가 어려워하는 부분을 채워줘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같은 춤을 추더라도 감정이나 표정을 더 풍부하게 하려고 하죠."(안승균)
사실 대사가 거의 없고 안무로 구성돼 있기에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감정도 크다. 특히 마지막에 한 명씩 따돌려지는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두 사람 또한 이 장면을 가장 인상깊은 지점으로 꼽았다. 수많은 관객들이 함께 춤추는 커튼콜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공연 자체가 출연진들에게도 열려있는 작품이에요. 마지막에 한 명씩 따돌려지는 장면에서는 저도 마음에 소용돌이가 쳐요. 그 장면이 가장 공감이 가거든요. 사회도, 어른들도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학생들은 원시적으로 치고받는데, 어른들 싸움은 유치하고 더 잔인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순간을 적나라하게 얘기하는 부분이죠. 아무 감정 없이 사람을 보내거나 같이 있는 소외감, 폭력적인 것들이 느껴지죠. 이 장면을 보면 어른들도 찔릴 거에요.(웃음)"(안승균)
"어떠한 의도나 감정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무리가 되거나 소외가 되요. 사회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무리에 속해야 하는 강박? 공연할 때 매번 다르지만 저도 무리에 있을 땐 안정감을 느끼고 홀로 있을 땐 불안하고 작아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걸 통해 현재 제 삶을 바라보게 돼요. 과연 내 인생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강은나)
작품을 통해 스스로에 대해 더 다가가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 시간이었다는 두 사람. 강렬한 안무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댄스씨어터 '죽고 싶지 않아'는 오는 7월1일까지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공연된다.
"예술을 하는 거에 있어서 고민이 많아요. 보여야 하는 직업이고 사랑받아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자칫 저를 잃어버릴 수 있는 순간이 많아요. 이번 공연을 통해 느낀 건, 내가 존재하지 않고 남들이 원하는 누군가가 되면 배우든, 예술가든, 퍼포머든 가치가 없다는 거에요. 겉모습보다 내면을 채우는 시간을 많이 갖고 더 많은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강은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게 정말 어려운데, 사람으로서도 배우로서도 확신이라는게 생겼어요. 연기할 때는 캐릭터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하고, 이후에는 이게 맞았는지 의심해야 더 발전하고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작품을 통해 자부심이 생긴 것 같아요. '배우 중에 이거 할 수 있는 배우 있어?' 이런거요.(웃음) 전에는 이런 생각을 못했는데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많은 분들이 보러와주시면 좋지만, 특히 이쪽 일 하시는 분들, 배우 분들이 와서 보신다면 좋은 자극을 받으실 것 같아요."(안승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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